[단군]은 신화가 아닌 실존의 역사라는 의미입니다
이하 참고 바랍니다.
(동아시아에서 맨 먼저 나라를 세우다)
- 우리민족의 청동기 사용은 기원전 2500~2600년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을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다.
우리 민족의 능력이나 본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래 문화가 들어오기 이전 고대의 역사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그 시대 우리 민족과 이웃 민족의 문화 수준 및 문화 성격의 차이를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만
다른 민족과 비교하여 우리 민족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민족성은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학계에서는
외래 문화가 들어오기 이전인 고조선시대와 열국시대(列國時代)를 연구하는 학자가 매우 적다.
당시 우리 민족은 매우 유능했다.
우리 민족은 동아시아에서는 가장 먼저 금속을 발명하여 사용하였다.
인류가 처음 사용한 금속은 청동인데
지금까지의 고고학적 발굴결과에 따르면
우리 민족은 서기 전 2500~2600년 무렵에 이미 청동을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황하 유역에서는 서기 전 2200년 무렵에,
시베리아 지역에서는 서기 전 1700년 무렵에,
왜열도에서는 서기 전 300년 무렵에 청동기 문화가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은 중국인들보다 3백여 년 전에,
시베리아인들보다 8백여 년 전에,
일본인들보다는 무려 2천 2백여 년 전에 청동기 문화시대에 진입했던 것이다.
청동기 문화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금속 문화로서
석기 문화에서 금속 문화로의 변화를 가져온 매우 큰 사건이었으며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청동기시대가 되어야 대개 국가가 출현했다.
그러므로
청동기 문화의 개시는 인류 문화와 사회 발전이라는 면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
지금은 '방사성탄소 연대 측정법'을 비롯한 여러 가지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나라와 만주의 청동기 문화 연대가 매우 빠르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전라남도 영암군 장천리의 청동기시대 집자리와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의 청동기시대 고인돌 유적은
서기 전 2500~2600년,
만주의 청동기 문화인 하가점 하층 문화(夏家店 下層文化)는 서기 전 2410년으로 확인되었다.
(만주와 한반도는 고대로부터 한민족 활동의 중심지)
한반도 남단에서부터 중부를 거쳐 만주에 이르는 지역의 청동기 문화가
서기 전 2500여 년 전에 시작된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황하 유역보다 앞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의 기록에 따라 산출된
서기 전 2333년이라는 고조선의 건국 연대는
우리 민족이 청동기 문화를 가진 뒤 1백 70여 년이 지나 국가를 세운 것이기 때문에
과학적인 근거를 얻게 된다.
우리는 동아시아에서 맨 먼저 나라를 세운 민족인 것이다.
중국의 하(夏)나라는 서기 전 2200년 무렵에 건국되었다고 전해오므로
고조선 건국은 그보다 1백 30여 년 앞섰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조선은 한반도와 만주 전 지역을 아우르는 큰 나라로 발전하였다.
고조선은 우리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국가였다.
그 결과
한반도와 만주에 거주하던 모든 사람들은 같은 나라에 속한다는 귀속의식을 갖게 되어
우리 민족의 형성을 보게 되었다.
우리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나라를 세웠고 가장 먼저 민족을 출현시켰던 것이다.
출처 : 우리역사의 비밀 www.coo2.net
2.한단고기 위서 확률 0.00028
한단고기는 정사다.
1.환(한)단고기의 원본이 되는 규원사화 원본 발견. 1675년(조선 숙종 1년) 제작 원본이 국립중앙도서관에 있음.
2.대진국(발해)대왕 대흠무(大欽武)연호가 대흥(大興)이었는데
이 사실은 정효(貞孝)공주의 묘비가 발견된 1980년 이후에야 알려졌다.
그전엔 몰랐다.
그런데 "환단고기"의 "태백일사"에는 이미 <대흠무왕>의 연호가 '대흥'임을 밝히고 있다.
3.오성취루(五星聚婁)현상등 천문기록 일치.
4.조대기(朝代記) 삼성기(三聖記) 등 한단고기의 기록들이 조선왕조실록에 그 이름이 나옴.
등등 많은데 일단 천문기록을 살펴본다.
..........................................
[제 목] [천문학으로 고조선사 증명했다.] <시사저널>
BC(기원전) 1733년 <홀달 단제> 시대 단군 조선인들이 보았을 오행성의 결집 현상을
서울대 박창범 교수가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역으로 추적하여
컴퓨터 합성 기법으로 시각화했다.
한민족의 뿌리인 단군조선에 대한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기성 사학계로부터 위서(僞書)라는 누명을 쓰고 버려져 왔던 상고사 서적들에 대한
복권 작업이 젊은 천문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져 관심을 끌고 있다.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와 표준 연구원 천문대의 라대일 박사는
학계에서 방치해 왔던 상고사 서적들의 내용을 천문학적인 방법론으로 검증한 결과
당시의 실제 상황과 일치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여
학계에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지난 2월부터 8월까지 약 6개월에 걸쳐 진행된 이들의 연구는 상고사 서적들에 나타난
당시의 천문 현상 기록을 당시의 실제 천문 현상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과학적인 근거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박교수와 라박사가 연구의 원본으로 삼은 서적은,
단군조선 시대에 대한 풍부한 역사 기록과 함께 당시의 천문 현상이 비교적 상세히
기록돼 있는 <단기고사>와 <한단고기>에 들어 있는 <단군세기>이다.
<단기고사>는 발해의 건국 시조인 대조영의 아우 대야발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사서와 옛 비문, 현장 답사 등 13년간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엮은 단군조선사이다.
제1세 단군왕검으로부터 제47대 단군까지 약 2천여 년의 역사를
역대 임금의 재위 기간과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편년체로 기술하고 있다.
이 책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이름만 전해 오던 것을,
구한말의 한학자인 유응두가 중국 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단군세기>는 고려시대 행촌 이암이란 선비가 저술한 단군조선 시대 역사서로,
<단기고사>의 서술 내용과 큰 줄기가 서로 일치하고 있다.
평소 윤내현 교수(64·단국대 대학원장·동양사)는 말을 아끼고 몸을 낮추는 스타일이다. 30년 가까이 한국 고대사에 매달리면서 ‘비정통 역사학자’ ‘국수주의자’ ‘과도한 민족주의자’ 심지어 ‘북한 추종자’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기에 자연스레 몸에 밴 조심성이리라 짐작된다. 그런 윤교수가 요즘 부쩍 말수가 늘고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정년퇴임까지 2년도 채 남지 않은 마당에 이것저것 가릴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9월1일 ‘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가 추죄한 학술회의에 참가해 ‘한민족의 기원과 중심세력’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윤교수는 “우리민족과 문화의 기원을 외부에서 찾는 것은 자신감 부족 아닌가”라며 “초창기에는 우리 학문의 기반이 취약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지만 이제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학계의 통설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윤교수가 주장해온 ‘한민족 자생설’은 한민족이 외부에서 이동해온 것이 아니라, 한반도와 만주지역 토착인들이 연합해 우리 민족과 문화를 형성했다는 내용이다. 우리 민족과 문화의 기원을 끊임없이 몽골이나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등지에서 찾아온 ‘한민족 외래설’ 혹은 ‘민족이동설’을 정면에서 부정한 것이다.
최근 윤교수는 ‘우리 고대사-상상에서 현실로’(지식산업사)라는 책도 내놓았다. 1978년 첫 저서 ‘상왕조사(商王朝史)의 연구’를 발표한 이래 ‘상주사(商周史)’ ‘한국 고대사 신론’ ‘고조선 연구’ 등 중국사와 한국 고대사 분야에서 교과서나 다름없는 책과 논문을 썼지만 전문 학술서가 아닌 대중서를 낸 것은 처음이다. 그 책이 발매 몇 주 만에 2쇄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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