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

윤양에 일기

덕유파스텔 2007. 11. 25. 13:38

 

처음 열쇠를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땐.

" 이런. 집주인한테 또 가야겠네. 귀찮아. "

속 편히 생각하곤 슬슬 걸어 30m정도 떨어져있는 주인집에 갔다.

 

딩동 딩동 딩동

.....

??

당동 딩동 딩동

......

 

어라.

없네.

 

늘 집에 있던 아주머니라 조금 놀랐다.

장이라도 보러 가신 것이겠지. 타박타박 계단을 내려왔다.

 

집 앞에 빨래를 널러 가볍게 나온터라 옷이 엉망인데다

주머니엔 집열쇠만 빼고 다른 열쇠는 다 달려있는 열쇠꾸러미만 들어있을 뿐 1마오 조차 없다.

 

그러고보니 입구쪽에 매화가 피었던데....

슬슬 걸어 가다보니 동네 노인네들이 볕 좋은 목에 앉아 한가로우시다. 이때가 1시 반쯤? 날은 따끈따끈하고. 매화 향이 좋아 잠시 머물렀다.

하얀 매화는 반쯤 피어 아직 피지 않은 봉오리들은 어째 예쁜 접시에 하얀 비단공을 올려놓은 모양새다.

흐음. 향기 좋고~

 

다시 슬슬 걷다보니 운동기구들이 보인다. 아침에 노인네들 택견하면서 같이 하시는 것들이라 피식 웃음이 났다. 뭔 바람이 들어서인지. 올라선다. 스텝퍼인데 좀 그네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리를 주욱주욱 찢어가며 혼자 붕붕 신났다.

휘익휘익.

얼마쯤 했으려나 맞은편 스텝퍼에 할마씨 한분이 올라서서 붕붕 다리를 내저으시는데 이게 왠걸. 나보다 낫다. ㅎㅎ

좋은 벗 부르시는 소리에 할마씨는 가고.

잠옷을 입고 덜 마른 머리를 산발한 나만 남아 붕붕 신났다.

 

신기한 건.

지나가는 이들 중 누구도 나를 눈여겨보지 않더라는 것.

 

왠지 기분이 좋아져서는 스텝퍼에서 내려와 꽃 좋은 목에 털썩 앉아버렸다.

새 한 마리가 부른다.

새 한 마리가 대답한다.

어디. 어디려나. 고개를 휘젓다보니 참새는 아닌 것이 하얀 목을 하고 부른다.

새 한 마리가 대답한다.

부른다.

대답이 없다.

부른다.

대답이 없다.

부른다.

대답이 없다.

까만 날개로 날아가는 새를 목을 완전히 꺽어가며 보았다.

새가 떠난 자리엔 아직 덜 피어난 매화만 남았다.

이번엔 예쁜 접시에 빨간 비단공이다.

 

주머니엔 한푼도 없지. 꼬라지는 잠옷이지.

집에도 못 들어가지. 머리는 이제 다 말랐다만 산발이지.

허허허.

마음은 편하다.

 

오랜만에 뜻밖에 해바라기 놀이를 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집주인이 어째서일까. 돌아오지 않았다. 한시간은 지났을터인데...

어쩔 수 없지. 문 열어주는 사람을 불러와 시도했으나 문은 끝내 열리지 않는다.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주인집 앞에서 기다리기도 하고 몇번을 왔다갔다 하기도 하고.

시간은 4시에 가까워오는데 집주인은 돌아오질 않는다.

 

옆집 아주머니가 무슨 일이냐길래 대충 설명을 하고 염치불구하고 들어가서 한시간을 더 기다렸는데도. 오지 않는다.

결국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주안먼(전문가)을 불렀는데. 그노무 주안먼도 문은 못 열었다.

 

날은 이미 추워졌고, 아무리 생각해도 집주인에게는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절'망'

..............................

절망해야 정상이겠으나.

추운 것 말고는 (학원 못간거랑) 그닥 아무 생각이 없다.

 

기다린 끝에. 집주인 아저씨가 퇴근하며 본인 집 앞에 산발한 채 덜덜 떨고 있는 나를 보며 식겁한 작은 에피소드(???) 후에.

나는 집에 돌아왔다.

4시간만에.

 

집주인 아주매는 뭔 바람이 불어 샹강(홍콩)에 갔단다.

그럼 그렇지.

 

새삼 생각해본다.

드넓은 상해땅에 홀홀단신 사는 주제에

친한 친구 전화번호 하나 따위도 못외우는 숫자치에게.

 

열쇠.

는 누구에게 맡겨야 하는 걸까.

 

남에게 민폐끼치길 죽도록 싫어하는 내 성격에

차라리 우편함이나 창틀 밑에 숨겨놓을 이 답답한 인간에게

언제든지 부담없이

나 열쇠 또 놓고 나왔어. 열쇠 좀~

하며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나의 열쇠를 맡아줄 사람이.

 

 

나의 마음을 맡아줄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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