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채화. 2006. 3월작. 준비
"주관 객관을 잘 조화하라"
미술감상의 가장 이상적인 자세는 역시 주관과 객관이 잘 조화를 이루는 데 있다.
예를 들어서 조선시대 때의 글씨 한쪽이 있었다고 하자.
언뜻 보아서 유수(流水)와 같은 흘림체의 필세(筆勢)가 어느 면으로 보나 명필인 것 같은 것만은 틀림없다.
그런데 우선 씌여진 글자가 무슨 자인지를 모른다거나 찍혀진 낙관이 어떤 사람의 것인지,
글씨의 서체는 무엇인지, 또한 글씨가 무슨 뜻을 의미하여
어느 곳에 걸어두어야 하는 것인지를 모른다면 그 글씨가 지닌
참된 가치를 올바로 인식하지 못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를테면 글씨의 내용이 장수의 용감한 기상과 공적을 담은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음식점에 걸려있다든가, 반대로 음식과 미주(美酒)를 칭찬하는 내용을 장수의 방에 걸어둔다면
글씨 그 자체는 모두 명필이라 하더라도 어딘가 걸맞지 않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림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느 외국인이 시골장터에서 산 요강을 본국으로 가져가서
식탁 위에 화병으로 사용하였다는 말은 유명한 웃음거리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한구절의 에피소드에서 바로 주관과 객관과의 시각의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미술작품의 향유는 궁극적으로 주관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진정한 이상적 주관이 형성되기까지는 문화라고 하는 거대한 유형,
무형의 자원이 뒷받침되어서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일련의 요소들이
수용됨으로써 진정한 감상의 경지에 진입할 수 있는 것이다.
감상자의 주관적 시각은 생활습관, 지식의 정도,
민족성, 기후, 자연조건 등에서도 많이 비롯되어진다.
서양사람들의 눈에 비친 동양의 서예는 더더욱 그와 같은 현상이 뚜렷할 수밖에 없다.
즉 그 서체의 아름다움은 다소 느낄 수 있지만 문자나 그 뜻은 전혀 모른 수밖에 없으므로,
객관적으로는 진정한 감상의 요건이 갖추어져 있지 못하다고 볼 수 있다.
미술감상의 우선적인 방법으로는 전시회의 화집목록을 통한 간단한 이해와 새로운 정보들을 신문, TV, 잡지 등을 통해 주의깊게 관찰한다거나 스크랩하는 방식 및 전시장에서의 작가와 대화 등을 통한 접근이 있을 것이다.
요즈음과 같이 매스컴이 발달한 시기에는
비교적 중요한 전시회에 대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10여개의 미술전문지나 각 TV, 신문 등을 통해 자주 그 주변을 스케치 하거나
심도있게 다루게 되므로 감상자의 입장에서 보면 조금만 성의를 보여도
자기가 감상하고자 하는 전시회의 자료를 구할 수가 있으며
서적이나 기타 교양강좌를 통해서도 점차 창작의 수용자들을 위한 참여의 폭을 넓혀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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