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나는 봄을 앓는가 봅니다.
바람많은 바다자락에 붙은 상해는
봄이 한창입니다.
볕 바른 매화는 이미 꽃잎을 날리고,
조근조근한 냉이꽃은 바닥에 하얗습니다.
문득 일렁이는 바람에 고개를 들어 바라봅니다.
시선이 가 닿은 곳은 늘 뜻하지 않아도 머무르는 동북.
사랑하는 고운 이들 오늘 하루 살고 있을 그 하늘.
눈을 감아.
그 하늘 아래를 그려냅니다.
어머니.
언젠가 제가 어머니께 남긴 글에
봄을 그리는 딸의 모습이 눈에 선해
마음 아프다 하셨지요.
아마 따듯한 마음으로 말씀하시는
그 눈에 보이는 봄 풍경은
제 눈에도 비쳐올 겁니다.
매일을 다녀가는 봄을
많이 많이 담아 넣으시길 바랍니다.
아버지.
창 밖으로 봄 햇살 아래
버드나무 여린 새순을 바라보다
혼곤히 잠이 들었을 때,
열두어살 난 어린 딸이
당신을 따라 산을 오르던 날의 꿈을 꾸었습니다.
씹으면 단 맛이 나는 새순,
신 맛이 나는 새순,
쓴 맛이 나는 새순.
일러주시며 갈빛 그을린 이마에
송글한 땀을 훔쳐내시던 덥수룩한 까만 머리,
웃던 그 입매,
어마어마해 보였던 못 박힌 손.
꿈에서 깨어나.
한참을 창 밖에 버드나무가
햇살에 반짝이는 모양에
넋을 놓고 보고만 있었습니다.
안녕하신지요.
오라버니.
아마 아직 이 봄은
오라버니가 있는 군대라는 곳의 담을 넘지 못했만.
보여주고 싶어.
죽은 것만 같았던 거칠한
나무에도 새순이 피어나는 걸.
우리 대추나무는. 잘 살고 있을까?
지성.
경영관에서 내려오는 길,
빈약해만 보였던
키 작은 벗나무에 벗꽃은 피었는지 모르겠네요.
처음 당신과 걷던 길이라
한갖 마주하는 길가 먼지 뒤집어쓴
상해의 보잘것 없는 벗나무조차 꽃을 피우면
그 길이 떠오릅니다.
길을 따라 걸으면
나무 아래 등 대고 기대앉아 아무 말 없던 우리
창경궁 그 시간으로 갈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나와 다르지 않아,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행복만을 빌던
당신이 떠오릅니다.
워나.
뜻없이 흘린 말에
너는 정말 주먹만한 목련을 따다 주었지.
너는 잊었더라만은.
아마 그것은,
숨을 쉴 때마다 폐에
얼음이 들어와 박힐 것만 같은 겨울이 지나면.
봄은 조용히 매일을 다녀가고,
누군가 꽃으로 그 곳에 있을 것이라는 약속.
괜한 기대로 부풀려진 마음은
정작 다가온 현실에는
늘 만족하지 못하는 법이기에
나는 봄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기대를 접어 닫혀진 마음에도
봄은 살랑이며 불어듭니다.
눈을 감으면 홀연히
기억들이 그 봉오리를 터뜨리듯 피어납니다.
향기도 제각각이라 울고 웃지만,
봄은.
겨울이 지나면 오는 봄은.
겨울이 지나야 오는 봄은.
그래서 아마 나를 앓게 하는 모양입니다.
봄입니다.
이런 내게도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