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야기

빈 센트 고흐, 우울한 날에 표상

덕유파스텔 2008. 2. 4. 12:34

cafe terrace on the place du forum

 

"이 그림에서는 검은 색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밤을 그렸지.

아름다운 푸른색과

보라색, 초록색만 사용했단다.

이렇게 밤을 배경으로 빛나는 광장은 설퍼옐로와

라이미 그린을 사용해 그렸지."

                - 누이에게 보낸 편지 中

위의 편지내용을 보면 이 그림을 감상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색의 강렬한 조합이 멋있게 떨어지는 작품이다.
어두움뿐일 것 같은 밤거리를 이리도 눈부시게 표현하다니...
고흐의 색이기에 가능한 것 같다.


 

Dear Bernard  씨뿌리는 사람

르에게

<씨 뿌리는 사람>의 스케치를 보내네.

흙은 온통 파헤친 넓은 밭은 선명한 보라빛을 띠고 있네.

잘 익은 보리밭은 양홍빛을 띤 황토색이네.

하늘은 황색 1호와 2호를 섞어 칠했는데,

흰색이 약간 섞인 황색 1호 물감으로 색칠한 태양만큼이나 환하네.

그래서 그림 전체가 주로 노란색 계열이라네.

씨 뿌리는 사람의 상의는 파란색이고 바지는 흰색이네.

크기는 정사각형의 25호 캔버스. 노란색에 보라색을 섞어서

중성적인 톤으로 칠한 대지에는 노란 물감으로 붓질을 많이 했네.

실제로 대지가 어떤 색인가에는 별로 관심이 없네.

낡은 달력에서 볼 수 있는 소박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거든.

또하나의 풍경 스케치를 편지에 그렸는데,

해가 지는 것처럼 보이나 달이 뜨는 것처럼 보이나?

여하튼 여름 태양이네.

마을은 보라빛이고, 태양은 노란색, 하늘은 청록색이네,

밀밭은 오래된 황금빛,

구리빛, 녹색을 띠는 황금빛,

혹은 붉은 황금빛, 노란 황금빛,

노란 청동빛, 적록색 등 모든 색을 담고 있네.

크기는 정사각형의 30호 캔버스네.

미스트랄(지중해 연안에 부는 북서풍)이 한창일때 이 그림을 그렸는데,

오죽했으면 이제리을 말뚝으로 고정해야 했네.

자네에게도 권하고 싶군.

이젤 다리를 흙 속에 박고 50센티미터 길이의 말뚝을 그 옆에 박았네.

그리고는 이 모두를 로프로 묶어야 하네.

그렇게 하면 바람이 불어도 작업을 계속할 수 있지.


 

road ith ypress nd tar

사이프러스 나무와 별이 있는집

 

cypresses

 

테오에게

색체와 명암은 얼마나 멋진 것이냐

그것 앞에서 아무 느낌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삶에서 동떨어진 채

지낼 것이다

모베는 내가 이제껏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게 가르쳐 주었다

그 가운데 몇몇은 너도 아직 보지못한 것일지 모르니 나중에 가르쳐 주마

언젠가 너와 예술에 대한 대화를 나누길 바란다.

이 기간이야말로 고흐 예술의 참다운 개화기(開花期)였다.

그의 예술적 정신은 20세기 초에 일어난 포비즘 화가들의 지표가 되었다.

태양을 훔친 화가 Vincent van Gogh..

 

그의 강열한 붓터치와 색감.

그것은 타오르는 그림에 대한 열정과 삶의 여정이리라.



1890년작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

 

비오는 날이나 폭풍이 부는 날 그림을 꼭 그려야 겠다고 다짐하던 빈센트

빈센트 최후의 3점의 대작중 하나이다

 

그는 이그림을 완성 며칠후 이 보리밭 언덕에 올라 1890년 7월 27일

자기 가슴을 권총으로 쏘았다.

고흐는 상처를 손으로 누루고 들어가서

자기 가슴을 쏘면서도 명중은 못시키는 여린 마음...


별이 빛나는 밤 The Starry Night  종류 : 캔버스에 유화크기 : 72.4х91.4㎝제작연도 : 1889년
뉴욕현대미술관 소장

 

고흐가 그 삶의 마지막 1년, 정신병과 싸우며 그린 작품이다.

공동생활을 하고 있던 고갱과 다투다가 자기 귀를 자른 고흐는

아를의 병원에서 퇴원한 후에도 간혹 발작을 일으켜

"나는 자신에게 과(課)해진 미치광이 역할을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생각한다"며

1889년 5월 아를에서 가까운 상 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고흐는 그해의 7월과 12월에도 발작을 되풀이하였으며,

이 그림은 그 발작 사이에 그린 상 레미 시대의 작품이다.

고흐가 비저널이었다는 사실은 아를 시대까지의 작품에는 거의 표면적으로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항상 현실의 사물에 밀착하는 화가였던 것이다.

그러나 "자연은 어떠한 이유에서도 변화시키지 않겠다"고 한 고흐도 본질적으로는

서정가(抒情家)이고, 뛰어난 비저널로서의 일면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아를 시대까지의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자연이나 물체와 마음을 상통하는 일종의 주술사였으며,

그의 기술적인 제어력의 완성과 마음의 성숙함이 이윽고

상 레미 시대에 있어 비저널로서의 고흐를 탄생하게 하는 것이다.

철창이 쳐진 정신병원의 창 너머로는 상 레미의 시가와 별이 깔린 하늘이 보인다.

별 하나하나는 심장의 동계(動悸)처럼 빛을 변화시키고

끝 모를 창궁(蒼穹)의 푸름은 그 중핵(中核)을 탐구하는 것처럼 소용돌이치고 있다.

별들도 소용돌이치고 모두가 구심적인 운동과 통일적인 움직임을 보여 주는

이 장대(壯大)한 밤의 시(詩)는 자연과 사물의 내면에 접촉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서정성·신비성을 보여 주고 있다.

조용하면서도 생동감이 있는 신비한 밤이다.

37년의 짧은 삶을 산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오랜 우회(迂廻)의 길을 걷다가 27세가 되던 1880년에야 화가의 길에 들어,

불과 10년의 작품생활 끝에 회화사(繪畵史)를 빛내는 숱한 명작을 남겼다.

그것도 발작과 퇴원이 되풀이된 그의 마지막 삶의 2년 반을 보낸 아를 시대에 약 200점,

상 레미 시대에 약 100점의 그림을 남겨...

 

                                           별이빛나는밤에Starry Night over the Rhone, 1888

 

  그가 삶의 마지막1년 정신병과 싸우며 그린작품이다

공동생활을 하고 있던 고갱과 다투다가 자기 귀를 자른

고흐는 아를의 병원에서 퇴원한 후에도 간혹발작을 일으켜

"나는 자신에게 과(課)해진 미치광이 역할을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생각한다"며

1889년 5월 아를에서 가까운 상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고흐는 그해의 7월과 12월에도 발작을 되풀이 하였으며

이 그림은 그 발작사이에 그린 상레미시대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