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야기

고호와 해바라기

덕유파스텔 2008. 2. 3. 11:52

제가 해바라기꽃을 처음 본 것은 준데르트에 있을 때 입니다. 아마 형 빈센트의 비석을 발견한 그때라고 생각합니다. 교회 무덤을 둘러싼 해바라기 꽃들이 한 여름을 온통 노랗게 물들였습니다. 언제 보아도 태양을 향해 서있는 그 꽃이 저는 좋았습니다. 커다란 키에 큰 잎사귀들, 그리고 꼭대기를 장식한 커다란 꽃, 그 노란 꽃 속에 수많은 씨를 가지고 있는 이 꽃을 저는 무척 좋아했습니다. 씨가 여물 때 까지 찾아가서 보고 또 보고 그리고 씨가 여물면 동생들과 같이 까먹던 생각이 납니다.

해바라기 꽃에서 저는 인내심을 배웠습니다. 한 여름 내내 그 뜨거운 태양을 향하여 묵묵히 서있는 그 꽃이 너무나 대견스러워 보였습니다.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그 꽃은 더욱 활기를 찾습니다. 구름이 끼고 비가 올 때면 그 커다란 꽃은 고개를 땅으로 향하여 슬픈 듯 태양을 기다립니다. 그 꽃에 맺힌 씨앗 하나하나는 태양을 흠모하다 잉태된 생명입니다.

저에게 해바라기꽃은 인내와 희망의 상징이자 기쁨과 행복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고통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 뜨거운 여름의 태양을 참고 이기는 고통이 그 열매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 꽃을 처음 그린 것은 파리에 있을 때입니다. 물론 그 전에도 그려본 적은 있으나 어떤 의미를 담아 그린 것은 그 때가 처음입니다. 네 송이의 해바라기 꽃 중 한 송이가 하늘을 향하고 있는 그림, 또는 두 송이의 해바라기 꽃 중 한 송이가 뒷면을 보이고 있는 그림, 그 당시 저의 희망과 고통, 소외감 등을 그린 것입니다.

                                                                    - (빈센트 반 고흐, 내 영혼의 자서전 중에서) -

 

 

해바라기 꽃을 희망과 기쁨의 상징으로 그렸습니다. 그야말로 노란색의 하모니가 울려퍼지는 교향곡입니다. 아래쪽은 밝은 노랑, 위쪽은 붉은 색이 가미된 진한 노란색 꽃병에 열네 송이 해바라기꽃이 꽂혀 있습니다. 일곱 송이는 저를 향하여 기쁨의 웃음을 짓고 있습니다. 다른 일곱 송이는 사방으로 손을 뻗치고 얼굴을 흔들며 흥에 겨워 춤추는 듯 합니다. 그 꽃들을 받치고 있는 녹색 잎사귀들은 춤 장단을 맞추는 북 치는 사람의 손가락 같습니다. 그 모든 것이 더욱 빛나도록 뒷 배경을 온통 노란색의 환희, 태양의 축복으로 그렸습니다. 이 그림은 저의 인생의 목적을 상징하며 기쁨에 겨운 합창입니다. 이제 저를 찾아올 그 존귀한 친구, 아니 위대한 시민 - 전에도 이곳에 있었고 앞으로도 있어야할 그 존귀한 시민 - 그의 이름은 고갱입니다. 이 그림은 그 귀한 분, 그 분을 맞이하는 기쁨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 그림 이후 일곱번에 걸쳐 거의 똑같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중엔 슬픔과 고통을 이기지 못해 그린 것도 있습니다. 꽃들이 바닥을 향하고 있는 그림은 희망차게 솟아오르던 기운이 실망으로 변했을 때 그린 것입니다.

- <열네송이 해바라기꽃>아를, 1888. 캔버스에 유채. 91x73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

 

저는 외톨박이 화가입니다.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는 버려진 인간입니다. 작열하는 태양마저도 저를 보고 외면하는 천애의 외톨박이입니다. 저의 심장은 항상 사랑과 정열로 고동치지만 그 고동은 허공에 메아리치는 고촉한 외침에 불과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저를 멸시하고 저에게서 떠나려 합니다. 그 마음을 화폭에 그렸습니다. 뜨거운 햇볕 아래서 사랑과 열정으로 여문 네 송이의 해바리꽃이 그 힘찬 위용을 자랑합니다. 그 중 한 송이가 꺽어진 줄기를 허공으로 향한 채 뒷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천덕꾸러기가 된 저의 모습입니다. 힘찬 자태를 자랑하고 있는 꽃들이 초라하게 버려진 저를 마냥 비웃는 듯 합니다.

- <네 송이 해바라기꽃> 파리, 1887. 8. 캔버스에 유채. 60 x 100 cm. 오테를로, 크릴러 뮐러 국립미술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