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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ll Life with Gloves and Pine Branch
병원에서 나온 후 고흐는 외출을 할수 없었기 때문에
자화상이나 정물화를 그의 방에서 그렸다
이 작품은 병중에 그렸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밝은 색조에 의한 안정감을 추구한 정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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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 gogh bedroom at arles
고흐의 아버지는 목사였고, 그는 신학교 지망생이었다.
어려서는 수업료가 없어서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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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cent's Chair with Pipe
1878년에서는 암스테르담 신학대학 입학시험에서 떨어졌다.
그가 그린 정물화는 극히 그의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손쉬운 것들
예를 들면 해바라기, 의자, 신발, 책들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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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4월 (누에넨) 65×78cm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소장
이 정물은 과일, 향나무가지, 장갑, 의자, 실내등 제재로서는 비교적 이채롭다
광주리의 테두리선이나 과일의 윤곽선 등은 주저없이 그은 명확한 것으로
이러한 손쉬운 현실적인 소재를 그리면서 화가로서의
직업의 안정감과 기쁨을 얻으려는 고흐의 뛰어난 작품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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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ll life of shoes
1886년 3월 고흐가 네덜란드에서 파리로 옮겨 작품생활을 시작할 무렵의 그림이다.
검누런 바탕에 달랑 놓인, 일그러진 검정구두 한 짝이 이 그림의 전부이다.
그러나 일찍이 단 한 짝의 구두가 이와 같은 무게를 지니고 그려진 예는 없었다.
가난한 자의 망가진 구두가 정물(靜物)의 주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사람은,
고흐 이전에는 단지 밀레뿐이었다.
하이데거는 구두 그 자체보다도 생활과 고난의 모든 것을 말하여 주는
이 한 장의 그림이 보다 잘 농민들의 본질에 있어
구두가 무엇인가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파리 생활을 막 시작한 고흐는 한편으로는 꽃다발을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구두를 그렸다.
말하자면 꽃다발과 구두는 네덜란드와 파리를 연결하는 상징이 되며,
또 네덜란드의 정물화에서 보인 애니미즘적(的)인 전통이
고흐에게 매우 친근한 구두라는 주제를 선택하게 한 것 같다.
신을 대로 신어서 너덜너덜하게 망가진 이 검은 '덩어리'는
단순한 고흐의 소유물이 아니라 그 자신의 모습으로서 생명의 빛을 발하는 것 같다.
필촉(筆觸)은 이전보다 작고 격렬하게 교차하고,
색채는 더욱 밝아지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분명히 몽티셀리(Monticelli)의 영향인 것 같다.
37년의 짧은 삶을 산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오랜 우회(迂廻)의 길을 걷다가 27세가 되던 1880년에야 화가의 길에 들어,
불과 10년의 작품생활 끝에 회화사(繪畵史)를 빛내는 숱한 명작을 남겼다.
그것도 발작과 퇴원이 되풀이된 그의 마지막 삶의 2년 반을 보낸 아를 시대에 약 200점,
생레미 시대에 약 100점의 그림을 남겨,
이 기간이야말로 고흐 예술의 참다운 개화기(開花期)였다.
그의 예술적 정신은 20세기 초에 일어난 포비슴(야수파) 화가들의 지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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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ena at Arles
활기찬 사람이 되기 위해 실패를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
실수를 두려워해서도 안된다.
사람들은 흔히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 훌륭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건 그릇된 생각이다.
그런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그대도 말했지.
그런 생각은 침체와 열등을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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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ate Lottery Office
사람을 바보처럼 여기고 노려보는 텅 빈 캔버스를 대면할 때면,
그 위에 무엇이든 단숨에 그려 넣어야 한다.
그대는 빈 캔버스가 사람을 얼마나 마비시키는지 잘 모를 것이다.
마치 화가에게 " 넌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 " 하고 말하는 것과 같다.
빈 캔버스가 사람을 바보 취급하고 노려볼 때,
어떤 화가들은 그 최면술에 걸려 결국 바보가 되고 만다.
그래서 많은 화가들이 빈 캔버스를 두려워 한다.
그러나 반대로 빈 캔버스는 " 넌 할 수 없다." 는
주술을 단번에 깨부수는 용기있고 열정적인 화가를 두려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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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yellow house
고흐는 1888년 5월에
아를역 인근 라마르티느 광장에 있는 노란집을 빌렸다
이곳에서 그는
고갱을 맞이하였고
처음에는 아주 좋앗고
나중에는 외로움이 더하여 불행을 비극으로 바꾸었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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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ight cafe
1888년 5월부터 9월 18일까지
고흐가 하룻밤에 1프랑씩에 하숙하고 있던
아를의 카페 드 라르카사르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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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wbridge ith ady ith arasol

올해는
빈센트가 가까이하고자 했던 매화를 만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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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 Tree in Blossom 1888 반고흐뮤지엄 암스테르담
반 고흐와
일본그림의 만남
그가 진정 가고싶은 곳은
햇빛 찰란한 지증해가 아니라
사쿠라가 만발한 일본이 아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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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nches_with_almond_blossom
고흐는 초봄이 되면 매우 조바심을 냈다 한다
자연은 그가 원하는 색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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