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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현대 미술
20세기에 들어오면서 고호, 고갱, 세잔 등을 숭배하던 젊은 화가들이 갖가지 생각을 바탕으로 새로운 유파를 탄생시켜 나간다.이러한 회화의 공통점은 자연을 그대로 묘사하는데 중점을 두던 것을 그만두고 형태와 색채를 새로운 각도에서 재해석했다는 것이다. 더욱 뚜렷해진 개성과 주관은 복잡하고 다양한 양식으로 전개되는 현대미술로 나타난다. 특히, 추상 미술의 등장은 새로운 표현의 세계를 열었다.
이 사실은 현대 미술의 많은 <이즘>에도 해당된다. 그것들이 가리키는 운동들은 명확히 독립된 존재로서 인정할 수 없는 것이거나. 아니면 고작 전문가들에게 밖에는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을 정도의 하찮은 것들도 많다. 이런 경향 중에서 우리는 세가지의 주요 사조-표현미술(ex-pression), 추상미술(abstraction), 환상미술(fantasy)를 구분할 수 있다. 이들 세가지 사조는 어떤 특정한 양식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인간의 기본 태도에 따르는 것이다. 표현주의 화가의 주된 관심사는 인간의 공동사회이며, 추상미술 화가의 경우는 실재의 구조이며, 환상 미술 화가의 경우는 개성적인 인간 심리의 미묘함이다.
한국현대미술
서구 미술을 수용한 지 85년. 고희동(高羲東)이 〈자매(姉妹)〉(1915)를 통해 ‘서양화가의 효시’로 알려진 이래 한국에서는 국외로부터 미술이 끊임없이 유입되는 가운데 수많은 작품의 현장과 비평이 이루어져 왔다. 특히 해방 이후 새로운 정점이 된 1950~1960년대 ‘한국의 앵포르멜 회화’. 그것은 한국의 현대미술이 기성 미술계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최초의 새로운 출발을 알렸던 ‘대표적인’ 예다. 10여 년 뒤 유신(維新)의 1970년대에는 ‘모노톤 회화’의 집단적 형성이 한국의 ‘대표적인’ 목소리로 세계를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과 민중미술. 또 인터넷과 다국적기업이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에 포스트모던. 왜 이 역사로부터 시작하는가? 또 왜 ‘대표적인’이란 단어를 새삼 강조하는가? 그것은 40여 년간 두께를 쌓아온 한국의 비평이 거의 10년 주기로 앵포르멜 회화와 모노톤 회화, 민중미술과 포스트모던을 중점적으로 말해왔다는 전제에서다. 한국 현대미술사의 큰 흐름으로 기술되는 미술의 현장과 비평에서 외적으로 해방과 새마을운동, 10월 유신, 군사정권의 역사적 사회 현실에 대한 인식의 정도와, 내적인 미술의 상황에서 이른바 ‘대표적인 미술’의 큰 줄기 형성에서 잘려나간 소수들의 발언에 얼마만큼 귀기울였던가? 글로 남기는 현장의 비평은 결코 철회할 수 없는 역사를 이룬다. 그것은 밥벌이와 주례사이기에 앞서 시대를 읽는 역사적 통찰과 두서없이 종횡 무진하는 미술 현장에서 가치와 의미를 부여할 작은 진주를 키우는 의무임을 자각하는 일이 우선한다. 현대미술의 맥락을 읽어내는 통찰력으로 큐비즘과 오르피즘, 초현실주의에서 없어서는 안 될 지성이 된 시인 아폴리네르(G. Apollinaire)가 생계를 위해 썼던 〈미라보 다리〉조차 냉엄한 역사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다시:전시와 비평 한원 미술관(관장 오상길)은 〈현장의 미술, 열정의 작가들전〉에 즈음하여 몇몇 미술가·평론가·미술사가와 함께 한국 현대미술에 연구의 두께를 더하기 위해 세 차례의 워크숍과 세미나를 진행했다. 기획측은 12개의 1980년대 소그룹들1)을 선택했고 전시작품들의 다양한 양적 문제보다 새로운 비평의 물꼬를 트기 위한 토론에 주안점을 둠으로써 일종의 메타 크리틱(meta critic)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사를 재조명하려는 의도였다. 그리고 예상한 대로 토론자들은 워크숍이 진행될수록 산적한 문제들과 풀어야 할 과제들을 차츰 확인하게 되는 양상이었는데, 여기서 두 번째 워크숍을 통해 필자가 논의를 제안했던 1980년대 소그룹들에 대한 기존 비평들의 몇 가지 근본적인 문제점을 다루어 진전시키고자 한다. 첫째는 비평적 해석이 작가와 소통하는 토론 없이 진행되는 경우와, 그들을 발생시킨 한국의 역사·사회에 대한 접근이 뒤로 미루어진 채 모더니티·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탈장르·해체 등 광범위한 서구미술사의 용어들과 리오타르·데리다·하버마스·푸코·라캉·소쉬르 등의 무수한 논의에 대한 피상적인 잣대가 1980년대 소그룹 운동을 난타했던 양상에 대한 것이다.2) 피상적 비평은 작품의 의미에 대한 개별적 연구의 층을 두텁게 하는 데 기여하지 못했으며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의 단순한 적용을 거부하는 다수 작가들의 항변에 대한 정당한 반박도, 철저한 귀기울임도 보여주지 않는 기현상을 낳았다. 비평은 작가를 심판하는 장(場)이 아니라 작가의 사상, 작품과 더불어 새로운 지향점을 만들어 나가는 자리다. 둘째는 유사성의 문제다. 즉 20세기 후반 포스트모던이라는 이름 아래 거론되는 제경향들, 형상성의 회복이라는 측면에서의 트랜스 아방가르드 작가들, 그리고 보이스(J. Beuys)류의 개념과 설치 및 행위의 문제, 아르테 포베라 등 서구의 경향들을 배경으로 1980년대 소그룹 작가들을 피상적으로 재단하는 양상이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외형적 유사성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하며 문화적 차이, 역사의 배경, 작가의 입장 등을 철저히 비교하여 차라리 모방의 실체를 입증하거나, 혹은 사회적 특수성과 작가적 정체성에 접근한 분석을 통해 독창적인 비평을 하거나 양자의 과제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어떤 서구의 특정 경향도 총체적이고 깊이 있는 기획전이나 심포지엄으로 열린 적이 없으며3) 지속적인 연구논문도 발견하기 힘든 상태다. 그 결과는 피상적인 접근과 비교에 머무는 비평이 공식적으로 검증받는 장(場)의 부재, 그리고 작품 및 작가의 입장이 비평의 피상적 관점과 괴리감을 보이는 현상이 지속됐다.
그러나 이에 관한 비평4)의 예는 ‘난지도 그룹의 문제점 중의 하나는 서구 신사실주의의 겉모습과 비슷한 점…’이라고 하였을 뿐 구체적인 사례의 제시나 개별 작품의 의미 여부는 제시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소그룹 운동을 대표하는 글들과 개별적인 작업, 그리고 비평의 입장들, 세 영역이 혼돈 양상을 보이며 심지어 포스트모던의 범주화에 반대했던 1980년대 작가들이 다수 포함된 〈한국 현대미술의 최전선전〉(1987)의 카탈로그의 평문이5) ‘이번 〈현대미술의 최전선전〉의 모임은 그러한 관점에서 우리 자신의 이른바 포스트모던의 한 경향을 한자리에 모아 되돌아본다는 데서 우선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며…’라고 하여 포스트모던의 범주화를 자인하는 결과를 보여주었던 동시에 동일한 비평가가 같은 전시를 다른 지면에서 다시 비판하는 혼선의 양상을 보였다.6) 셋째는 한국 현대미술계의 기성 구조의 틀 속에 안주하기를 거부하는 젊은 세대의 혼돈 방황과 세대간의 전략적 대응의 문제다. 특히 1980년대 소그룹들은 1970년대 모노톤 회화 세대로부터 일종의 이유기적(離乳期的) 탈피를 감행하지만 모더니즘과 민중미술의 양대 산맥에 끼어 있던 형국인데다 다수 작가들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에 휘말리는 양상이었다.7) 한국의 1980년대 소그룹 운동의 의미는 미술 내적인 문제로서 조형성 외에 제도적 힘의 역학이라는 측면에서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 있다. 기성의 권위에 온몸으로 대항했던 다다(Dada)와 ’68 스튜던트 파워(Student Power)를 이들과 나란히 놓을 수 있을까? 혹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이나 《상실의 시대》(무라카미 하루키), 그리고 《별들의 고향》(최인호)이 갖는 1960~1980년대 젊은이들의 기성세대를 향한 구토와 함께 자신이 진흙탕 속에 빠져 있음을 발견하지만 구체적인 방향성은 상실하고 있음을 발견하는 상황과 유사하다고 할까? 현장의 작가는 ‘소위 1970년대 한국적 모더니즘은 대학과 대학원에 걸쳐 대단히 혼돈스러운 문제였다. 철저하게 서구 논리의 맥락에 입각한 체계도 아니고, 한국적 속성이라는 것도 애매한…당시 스터디 그룹의 주요 테마가 서구 모더니즘의 정체, 아방가르드의 본질, 그리고 ‘한국적’이라는 문제에 있었다 …’8)고 말한다. 즉 이들은 정신적으로 서구적 교육 시스템에서 성장해왔으나 완벽히 서구적이지 않고, 한국에서 성장했으나 오히려 ‘한국적’이라는 전통이 어색한 세대이며 모노톤의 획일주의를 거부하였으나 서구 사조와 전통, 그 어느 것으로부터도 뚜렷한 대안을 내놓기 어려웠던 방황의 세대였다. 보수에 대한 지성의 저항 비평은 이들을 일방적인 잣대로 모더니즘, 민중미술의 틈새로 빠져나온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틀에 몰아넣었지만 작가들은 이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러나 모노톤 회화의 획일주의에서 일탈하는, 당시 미술계 구조를 변화시키려는 전략을 취했던 상황을 1980년대 소그룹 전체에 적용할 수는 없으며 그룹이 하나의 이념을 지향하는 경우도 드물다. 기성세대로부터 이탈을 가시화하기 위해 전략상 오브제와 설치를 집중적으로 제시했던 ‘META-VOX’ ‘난지도’조차 멤버들의 내면적 성향은 제각기 달랐고9) ‘레알리떼 서울’이나 ‘현(現)·상(像)’ 등은 광범위한 매체, 광범위한 사상을 큰 규모로 집결시킨 채 공통이념을 보여주지 않았으며10) 그들에게서 기성세대로부터의 이탈이 ‘전략적 차원’에서 이해되는 것도 아니다.
넷째는 1980년대 미술이 1970년대 미술에 대한 반성이라는 공통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나,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1970년대 미술대학을 중심으로 한 모노톤 회화의 강박증으로부터의 일탈이 1980년대에 극대화된 것이라고 해야 옳다는 점이다. 즉 학구적인 스터디로 무장한 1980년대만큼 증폭되지는 않았지만 1970년대 역시 모노톤 회화 세력의 집결로 결국은 소외된 설치·오브제·행위 등 실험미술이 존재했다면 1970~1990년대에 걸쳐 이들을 통시적(通時的)으로 연결해야 할 필요가 있다. 1960~1970년대에 걸친 한국의 사회·미술 속에서 이승택·김구림·이건용·정찬승·성능경 등, 그리고 〈청년작가연립전〉 〈AG〉 〈ST〉 〈제4집단〉 등에 다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때 1980년대 소그룹 작가들이 보수에 대한 ‘지성의 저항’이라는 목소리로 다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몇몇 1980년대 소그룹 및 개별적인 작가들의 발언과 그들에 대한 비평이 보여준 괴리와 그 원인에 대한 확인 작업에서 출발하였으며 한국 현대미술계 구조의 전환에 대한 전략 차원에서 소그룹 운동의 성격과 그들이 표방했던 시대의식을 확인하고자 했다. 아울러 그러한 시도는 ‘소그룹의 이름들’이라는 컨테이너를 통해서가 아니라 ‘발언하는 작가들의 작업’이라는 컨텐츠를 통해서 면밀히 접근해 들어가야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고, 아직 개별적인 작가들의 작품과 입장에 심도있게 접근하지 못했던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한편 이번 기획에서 다루지 않았으나 전략적인 측면과는 무관하게 개별적인 조형적 탐구로서의 형상성이나 행위, 여성의 문제들이 1980년대 소집단들에서 진행되고 있었고 이 부분 역시 향후 필자의 과제다. 비평적 해석에 대한 메타 크리틱 필자는 위와 같이 전략적 차원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구조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1980년대 소그룹 운동의 대응방식이 미술계의 구조적 측면과 사회적 양상의 맥락에서 주목되어야 한다고 본다. 또한 그것은 작가 개개인의 작업 의미와는 다른 차원에서 접근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 이들의 작업은 그룹 단위의 목소리가 아니라 한 개인의 작업 역사로 하나씩 다시 접근되어야 한다. 그것은 이제까지 1960년대의 앵포르멜 운동과 1970년대의 모노톤 회화로 중심을 이루어온 한국 현대미술사의 주류 중심적 기술방식에 대한 메타 크리틱으로서의 대안이기도 하며 미술현상을 한국 사회사의 격동기에서 사회사적 관점으로 보는 또 다른 시각이기도 하다. 또한 서구의 포스트모더니즘 현상을 한국에 적용하는 데서 오는 식민주의적 관점의 오류와 폐쇄적인 국수주의적 관점의 오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서구 미술사와 서구 현대사의 두께가 서구 현대미술에 투영되듯이 한국의 미술 현장과 한국 현대사회사가 맞물리는 지점이 될 것이며 한국 현대미술이 하나의 현상을 제시하는 지점이 되리라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