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글

고구려의 전쟁

덕유파스텔 2007. 12. 26. 13:47

 살수대첩이 전부인가?

절대 아닙니다. 살수대첩은 고수전쟁이라는 큰 지류 중의 작은 물줄기일 뿐입니다. 실제로 반나절만에 끝나버린 살수대첩 말고도 수나라의 인부 절반(대략 100만 이상)이 희생된 요수 전투(113만 육군, 10만 수군, 300만 보급병, 보급병은 화살받이 성격이 강함.)와 수나라 백만대군과 고구려 4만이 6달간을 싸웠던 요동성. 그러면 고구려의 승리 요인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살펴봅시다.

 

 

첫번째의 전투, 요수전투!!

  고구려측 시나리오는 추측컨데 요수를 방어선으로 선택하고 단 한 명도 이 강을 건널 수 없게 한다였을겁니다.

  하지만, 미치광이 수 양제 양광은 100여만 이상의 소중한 생명이 나가떨어지거나 무조건 강을 건널 다리를 만들라 명했고, 고구려 쪽에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1만의 사상자를 내며 도하를 허용합니다. 어찌보면 정말 무식하고도 단순하기 짝이없는 양제의 작전일테지만, 여하튼 첫 번째 전투에서 고구려는 전략적인 실패를 경험하며 1만의 군사를 잃습니다.

 

두번째의 전투, 요동성 전투!!

  수나라의 113만 육군이 6달을 공격하고도 이기지 못한 고구려의 4만 요동성 병력. 과연 이 4만의 요동성 병력은 어떻게 수나라 군대를 막았을까요? 물론, 요동성이 진짜 견고하고 높습니다. 로마의 콘스탄티노플도 기껏해야 25m 의 성벽을 갖고 있었지만, 요동성은 그 높이가 무려 30m 에 이르렀습니다. 아예 한 도시 자체를 감싸던 평야 위의 성인데다가 인공적으로 강까지 만들어 침략을 어렵게 만들었었지요.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겨우 4만으로 백만대군을 막아낼 수 있었을까요?

 

  이 공성-수성전에서 중요한 요인은 바로 작전 체계에 있었습니다. 수나라는 일일히 황제에게 보고하고 허락을 받아야되었던 구조고, 고구려는 장교들이 임의적으로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적절히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고유권한을 주었었습니다. 실제로 수나라의 백만 대군을 보고 기겁한 한 고구려 장군이 수나라에 투항했으나, 수나라 장수들이 일일히 황제에게 보고하고 다시 출발한 사이에 이미 고구려 진영에서는 장수들 몇이 독자적으로 움직여 성으로 밀려오는 수나라 군대를 위해 함정을 파 놓았고, 여기서 수나라군은 대패하여 맥이 꺾이고 맙니다. 게다가 아주 자그마한 시골성인 육합성을 궁여지책으로 공격했으나 거기서마저도 대패하여 사기가 완전히 땅바닥을 기게 되죠.

 

세번째 전투, 살수대첩!!

  많은 분들이 살수대첩을 그저 적을 물로써 쓸어버린것으로만 기억합니다. 허나 실제로는 이 살수대첩은 세계사에 길이남을 엄청난 정면전이였고, 이 정면전에서 적을 대파한 고구려가 살아남고, 여기서 대패한 수나라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겁니다. 그러면 이 살수대첩의 일지를 분석해 보겠습니다.

 

  첫째, 적의 보급로를 끊어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들과의 전면전에 앞서 고구려는 먼저 이들의 보급로를 차단해버렸습니다. 수군 10만을 대파해버린 것입니다. 수나라 수군이 평양성 근처에 오자 고구려군은 일부러 평양성을 열어두고 도망갑니다. 일시적으로 고구려의 수도이던 평양성이 적의 손에 떨어진거죠. 세상에 자기 수도를 미끼로 쓴 예는 없습니다. 여하튼 적들이 평양성의 위용에 놀라고 화려함에 놀라 약탈에 정신이 빠진 사이에 성 안과 성 밖에서 동시에 평양성에 대한 고구려군의 공격이 감행되었고, 수나라의 10만 대군은 꼼짝없이 전멸하게 됩니다.

 

  둘째, 적의 체력을 빼 놓아라.

  을지문덕은 일부러 하루에 7번이나 적을 치고 빼며 적의 정신을 빼 놓았습니다. 보급이 끊긴 군대가 세계 최고의 말인 과하마를 가졌으며 엄청난 사거리를 자랑하는 맥궁을 가진 고구려의 기병들을 당해내느라 몸도 마음도 모두 지친 상태였죠. 이들이 살수를 건너 평양성으로 향하던 도중에 고구려의 공격으로 이들과의 정면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셋째, 퇴로를 막아라.

  숫자는 많지만, 이미 힘이 빠진 수나라군과 수는 적지만 잘 훈련된(가장 미천한 문지기조차도 경당에서 5살때부터 활을 쐈다고 합니다) 고구려 군사들의 대결. 결과는 당연하게도 고구려의 대승으로 끝나고, 수나라의 군대는 다시 살수까지 쫓겨갑니다. 이들은 살수를 건너 도망치려고 하나 어느새에 엄청난 양의 물이 쏟아져와 퇴로는 완전히 차단되었고, 이들은 여기서 전멸을 당하게 됩니다.

 

 

그 외에 요인

공포감 : 수나라가 고구려를 칠 병력들을 징집할 때, 한족인들이 스스로의 손과 발을 잘러 징집을 회피했다고 합니다. 자기의 손과 발을 잘라서라도 피해야 할 전쟁. 그 공포감 또한 어마어마 했을것이며 이 또한 이들이 패배한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

  여진인들의 말에 의하면 살수를 건너가 고구려 군사들이 남은 보급병들까지 모조리 죽였다고 합니다. 이 살아돌아간 2천 7백명이란게 단순히 군인뿐만 아니라 건너왔던 모든 보급병들까지 다 포함해서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찌하였든 이 전쟁에서 대패한 수나라는 정신을 못 차리고 2차례나 고구려를 더 침공했고, 번번히 패퇴하더니 국력이 쇄진하여 멸망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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