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 모든 일들은 자꾸 하다보면 익숙해지는 법이이라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그런 방식으로 숙달된 일이라면 그리 황망하지를 않아
그것이 설령 나와 직결된 일일지라도, 이제는 제법 제3자의 입장에서
세상 일을 넌지시 바라보곤 하는 편이나, 어쩐 일인지 나는 아직 사람
떠나보내는 그 일에 대해서만은, 아무리 당해도 익숙해지지를 않는다.
예견된 일이었지만, 그렇게 또 빙장어른과 이 세상에서 하직을 하였다.
내가 빙장어른을 처음 뵌 것은, 버젓한 집안의 서른 다 된 맏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칠칠치 못하게 결혼하는 일을 무슨 먼 산 불구경하듯 하는
나로 인하여, 고육지책의 방도를 나의 선친께서 궁구하신 탓이다.
그 즈음 나의 선친께서는 나의 결혼 때문에 나를 훈육하고 문책하고
회유하시다 지쳐, 기어코 나중엔 나를 아예 빼고, 중매쟁이로 하여금
다리를 놓아 집안 대 집안으로 빙장어른을 몇 차례 만난 연후에
이미 이런 저런 중요한 이야기 다 오고 간 끝에 어찌어찌 이루어진
맞선보던 그 어색하고 겸연쩍던 자리였다.
자그마한 키. 이미 결혼을 했던 나와 동갑인 큰 처남을 앞세우고 오셔서
한 발 조금 물러나 중매쟁이 뒤에 서서 나를 지그시 바라보시던
형형한 눈. 나지막하고 힘 있는, 그러나 매우 신중하고 강단이 있는
음성. 나는 직감적으로 저런 사람과의 인연은, 좀 더 자유롭기를 원하는
나의 마음과 상충될 위험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되었으므로
그런 마음으로 보고 있던 나는, 매우 깐깐한 선비풍의 훈장어른 같은
타입의 그 분을 보고, 내심 이미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사실 그런 사소한 것 보다는, 이미 그 전에 세상이
그리 재미난 곳도 아니고 이런저런 인연 만드는 일이란 것이
결국 골치 아픈 일 만드는 일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문 이제부터라도 나의 머릿속 더 어지러운 짓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던 터라, 그 맞선도 사실 제3자가 가서 보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을 정도로 철저하게 무관심으로 응대했다.
그럭저럭 그 날 해질 무렵에서야, 내 선친께서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이 불효막심한 자식을 위하여 미리 하루 일정에 다 잡아놓은
무려 3건의 맞선을, 무신 비쩍 마른 누룩송아지, 아무리 팔려고 해도
잘 팔리지 않아, 이 장 저 장에 끌려다니듯, 그러나 가서 다 보고,
그래도 어느 처자가 제일 나은지 제발 나에게 넌지시 말이라도
한 번만 해 주고 가라고, 내 팔 붙잡고 애원하던 어머님의 손을
매정하게 뿌리치고, 나는 다시 묵묵히 배낭 하나에 얄궂게 낡은
야전잠바를 걸치고 일터가 있던 양산으로 가기 위해, 그 날
포항에서 출발하는 동해남부선 마지막 하행열차를, 머리 속
하얗게 비우고 아무 생각없이 그렇게 또 탔다.
포항 출신으로 그 일터에 같이 다니던 동료 5명이 함께
그 열차를 타기 전에, 열차여행의 무료를 달래줄 과자부스러기
오징어 몇 마리와 소주 큰 것 한 병을 사고, 열차를 타고 자리를
찾아 다른 칸으로 몸을 움직였다.
열차 통로를 걷고 있던 도중, 나는 문득 낯익은 얼굴의 한 사람을
발견하였다. 지금의 빙장어른 이셨다. 포항과 경주 중간쯤의
안강읍 사방 검단리에 사신다고 했으니, 아마 오늘의 맞선본
의견을 가족들과 나누고 귀가하시는 중인 것 같았다.
그 순간 사실 나는 모른 체 먼 산이나 보며 지금의 빙장어른을 그냥
스쳐 지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차피 어그러질 인연일 게 뻔한
상황에서, 그 분을 아는 척 하는 게 어느 누구에게도 아무 도움이
안 되리라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막 실행하려는 순간
어른께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시며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낮에 만났던 김참봉 어르신 자제분 아니신가? (그 때 아버님께서는
경주 왕릉에 도지사가 임명한 능참봉직을 봉직하시던 중이셨다.)
여기 앞자리가 마침 비었으니 앉으시게. 일터로 내려가는 중이신가?"
나는 어르신의 재빠른 눈썰미에 깜짝 놀라면서, 낡은 군용 야전
잠바에 구겨 신은 운동화 차림을 재빨리 고쳐 다잡은 다음 정중하게
인사를 드렸다. "어르신. 낮에 감사했습니다. 와중에 인사도 제대로
못 드린 것 같아서 송구스럽습니다."
"아니네. 경험 많은 나도 사람이 많으면 가끔 일의 순서나 경중을
잊고는 하지. 직장일은 듣자니 원자력발전소라는 게 매우 고되고
까다로운 일이라고 들었는데, 어째 할만은 하신가?"
보기 보다는 무척 유순하시고 잔정이 많으신 듯, 작은 일에도 많은
애착을 가지신 듯 보였다. 나는 좀 의아했으며 내심 상당히 당황했다.
은연중에 매우 과묵한 내 선친과는 달리, 그 어른께서는 마치 어머니께서
늘 그러시는 듯한 잔잔한 걱정스러운 말투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자네 춘부장께서는 경주 신라 김씨 진골 집안에, 워낙 빈틈없고 곧은
사람이라, 우리들 같이 초야에 묻혀 흙이나 뒤적거리며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가히 그런 일의 귀감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네.
중매쟁이와 자네 춘부장께 개략 들어서 알고는 있네만, 이렇게 가까이서
자네를 보니 참으로 반갑네. 부지런한 모습 보니 더 더욱 고맙고……."
주로 어르신께서 말씀을 하시고 내가 짧게 대답을 하는 형식이었지만
그 짧은 거리의 여행은 훗날 나에게는 잊지 못할 매우 소중한 여행이
되었다. 어르신께서 여러 가지 하고 싶으신 말씀이 더 있는 듯했으나,
그랬거나 말거나 열차는 무심하게 곧 사방역에 도착하여 곧 떠나야 함을
재촉이라도 하는 듯, 식식거리고 있었다.
나는 빨리 하직인사를 드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작은 역이라 짧은
대기시간 때문에 열차에서 내려 내린 그 자리에서 깊이 머리 숙여
인사를 드렸다. 어르신께서 저 만큼 역 출구쪽으로 가시다가 뒤돌아
보면서 어서 열차에 타라는 손짓을 훠이훠이 해 보이셨다.
열차는 밤늦게 동해의 작은 항구에 나를 부뤘고, 나는 또 일 하나만
쳐다보고 거기에 전력투구 했다. 그 즈음 나는 이미 일은 내게 있어서
기술을 연마한다거나 돈을 번다거나 하는 의미보다는, 땀흘려 일한다는
그 하나의 의미로 귀착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 전에 화이트 칼라의
직종을 안 해 본 것은 아니나, 입에 발린 소리나 고객에게 늘어놓고
펜대나 끼적거리는 보다는 직접 땀흘리는 블루 칼라가 적성에 맞았다.
노가다는 집중하지 않으면 죽거나 다칠 확률이 매우 높다. 집중하지
않으면 노가다에 살아남을 수 없고, 무엇에 집중하면 시간도 무척 빨리
흐른다. 또한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노가다의 장점이다. 순식간에 아마
서너달쯤 흘렀을 것이다. 어느 날 설치물에 대한 검사업무로 오전 내내
어두컴컴한 현장 구석에 처박혀서 도면을 보고 무엇을 자로 재고 하는
일을 거듭하고 있는데, 사무실 직원이 와서 누가 정문에 나를 면회하러
왔으니 나가보라는 전갈을 주고 갔다.
나는 갑자기 의아했다. 아주 친한 친구들 어느 누구에게 조차도 이 먼
시골구석까지 노가다하러 와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으므로, 딱히 누가
나를 면회올 계제가 없었다. 서둘러 업무를 마치고 먼지투성이인 손만
대강 씻은 다음, 언덕배기 꼭대기에 있는 정문 면회실로 향했다. 언덕
저 아래에서 위를 쳐다보니 누가 면회실 앞에 서 있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검은 두루마기 휘날리며 뒷짐 떡 짚고 서 계신
자세가 아무래도 내 선친인 듯 싶었다. 숨을 헐떡거리며 언덕배기를
뛰어 올라가며 아무리 생각해도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 선친
께서는 내가 학교 다니는 동안은 물론이고, 군대 있을 때도 나를 면회
오신 바가 없으며, 하다못해 술 먹고 땡깡부려 파출소에 가 있거나
조금 큰 사고를 쳐 구치소에 있을 때도 나를 면회 오신 적은 없으셨다.
언덕배기에 올라가니 대뜸 경비실에 대 놓고 호통부터 치셨다. 뭐시라?
애비란 자가 지 아들 보것다고 불원천리 먼데서 새벽밥 먹고 왔는데
국가중요시설이라서 면회가 안 된다고? 세상에 어디 법이 자식 못 보게
하는 법이 있단 말인가? 그 법 만든 사람들은 지 애비 에미도 없는 그런
사람인가? 내가 경비실에 들어가니, 경비대장이 빨리 모시고 나가라는
손짓을 하며 한 마디 한다. 아따, 자네 부친 대단타. 내가 졌다.
밖을 나가니 내 선친께서는 이번엔 나의 땟국에 절은 안전화며 추레한
작업복 입은 모습을 아래 위로 훑어 보시더니, 먼 산을 보시며 한숨부터
푹 쉬신다. 이런 줄 알았으면 사복 입고 나올걸 하며 후회를 하고 있는데
기어코 핀잔 한 마디를 던지신다. 세상에 아무리 젊은 놈이라도 편케 일
하고 돈 쉽게 벌 일이 숱하게 많이 있건만, 어찌하여 너만 딱히 이런
힘들고 위험하고 사람 꼬라지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느냐 이 말이다.
별로 힘든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직업에 귀천이 없기도 하고, 어차피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너무 나쁘게만 보지 마십시요. 다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이 할 만한 일입니다. 그 말을 한 후, 나는 선친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내가 하는 노가다 일을 만류하러 오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버님. 어쩐 일로 이 먼 곳까지..?
내 말을 들으셨는지 못 들으셨는지 대꾸도 없이, 선친께서는 정맥이 툭
불거지고 여위신 팔뚝을 걷어 시계를 보시더니, 벌써 밥때로구나. 어디
가서 요기라도 해야지. 하시며 성큼성큼 앞서서 걸어 읍내쪽으로 발길을
옮기신다. 가까운 곳에 중국집이 하나 있어 거기를 들어가시더니, 미처
앉기도 전에 주방에 대고 큰 소리로 짜장면 곱배기 두 그릇 주소ㅡ 하며
큰소리로 외치신 후, 물을 청해 마신 다음 나를 지그시 쳐다보신다.
내가 어제 사성을 써서 보냈다. 이게 내 선친의 첫 마디였다. 사성이라?
어디서 들은 얘기 같긴 한데, 도무지 그 뜻이 정확하지 않고 가물가물
하다. 결혼하기 전에 치루는 어떤 의식이 담긴 글이라고 어렴풋이 추리를
하다가, 결국 선친께 여쭈었다. 사성이라면 결혼하기 전에 하는 뭐 그런
거 아닙니까? 선친께서 일침을 놓는다. 영 반편은 아니구나.
다른 건 내가 알아서 할테니, 너는 그냥 가만히 내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가만 있으면 된다고요? 그런데 지금 제가 누구하고 결혼을 한다 이 말씀
입니까? 그렇지. 바로 그 얘기니라. 제가 누구하고 결혼을 하는데요?
니가 그거 알아서 뭐 할라고? 저번 선본 날 마지막 본 여자다. 그 말을
하신 연후에 선친께서는 입을 꾹 다무신다.
아무래도 이건 아니었다. 결혼을 하면 내가 결혼을 하는 건데, 나는 그 때
세번째 본 그 여자의 모습은 고사하고 얼굴도 기억이 안 났다. 기가 막혀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으려니 선친께서는, 자ㅡ 그럼 그 얘기는 이제 끝난
걸로 보고..하시며, 서둘러 이야기를 끝내려 하신다.
내가 황급히 저지했다. 아버님. 안 됩니다. 얼굴이라도 제대로 알아야 할
것 아닙니까? 글쎄 니가 얼굴 알아서 뭐할라고? 곰보도 째보도 아니려니와
너는 아직 결혼을 얼굴이나 몸매하고 결혼을 한다고 생각하느냐? 그래도
제가 한 번만 더 보고 결정하도록 해 주세요. 이건 이미 너하고 나하고의
일이 아니다. 이미 집안 대 집안으로 사성을 정중하게 써서 보냈느니라.
너는 애비를 결혼 사기꾼으로 만들 생각이냐, 뭐냐? 그래도 아버님. 한 번
더 기회를 주세요. 또 기회를 주어봤자 지금 니 눈은 아직 눈이 아니므로,
또 본다고 해도 너는 결국 답을 내리지 못할 것이다. 내 나이가 지금 몇인데
손주는 커녕 맏아들 장가 가는 것도 못 보고, 잘난 니 결정 기다리다가 내
허리 다 꼬부라지게 생겼으며, 그러다가 조상 앞에 갈 면목도 없게 생겼다.
정 보고 싶으면, 달포 지나고 패물 맞추기로 했으니 그 때 보면 되것다.
내 선친께서는 그렇게 사성 뿐만이 아니라, 패물 까지 배수진으로 구비를
하고, 이미 그 전에 세상을 자신의 수중에서 버리고, 방랑을 주식으로
삼아버린 이 못난 맏아들을 위하여, 어느 누구에게도 하시지 않은 일,
평생에 단 한번, 나를 면회하러 이 먼 시골구석까지 오신 것이다.
내가 지금에사 결정적으로 내 선친을 위하여 그 결혼을 하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었다면, 세상 어느 누가 믿지도 않을테지만, 그 때는 정말 그랬다.
그 동안의 그 숱한 불효를 씻어낼 요량이 내게는 없었으며, 그건 그렇다고
쳐도 세상으로부터 외곬수로 이격되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 외로운 일이지,
낮의 뼈저린 노동과 밤의 지독한 깡술 부어넣기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나에 대하여 느꼈던 중요한 일 하나는, 아무리 가볍고
작은 일이라도 늘 잘 풀리지 않고 꼬이고 맺고를 거듭하는, 말하자면
전형적으로 팔자가 세다고 하는 그것이었고, 그런 것이 젊은 초기에는
고통스럽고 맘에 들지 않아 늘 반항적이었으나, 세월이 좀 흐르니 그런
것도 그냥 타인의 생을 보는 듯한 눈길이 되어버려서, 그리 힘들다거나
억울하다거나 하는 마음도 없어져 버렸다.
그렇듯 늘 문제점 많은 나에 관한 일들이, 어느 순간부터 물 흐르듯 술술
풀려나가기 시작했던 것이 그 무렵 뿐이었던 것 같다. 모든 일이 아버님
정해 놓은 수순대로 천애무봉 일사천리로 내달리며 풀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른 것은 몰라도,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하는 이 노가다 일을 그만
두기에는 이미 내가 이 일에 너무 깊이 관여되어 있었고, 그 일에 깊은
재미를 느끼고 있을 무렵이라서 그래도 그저 나는 일에만 매달려 있었다.
아버님 말마따나 드디어 패물 맞추는 날이 왔다. 나는 어느 토요일 일찍
고향에 올라왔고, 오후가 되자 빙장어른께서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애지
중지 키워온 맏딸과 장모님을 대동하고 우리집이 있던 시내로 나오셨다.
다방으로 모셔 우선 빙장어른과 빙모님께 인사를 정중하게 다시 드렸다.
그 자리에서 나는 내 선친께서는 그리 말하는 것을 즐겨하지 않으시는
분이나, 빙장어른께서는 말씀하시는 것을 매우 즐거워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더군다나 말만 많고 실속을 별로 없는 그런 경우가 아닌, 꼭
필요한 말씀을 적소에 찬찬히 자세하게 설명하시는 모습은 내가 나의
선친을 통하여 배우지 않은 그런 모습이라 무척 흥미롭게 듣고 있었다.
이야기를 끝내고, 우리는 시내에서도 잘 한다는 어디 금은방으로 향했다.
이미 많이 늦어버린 얘기지만, 나는 그때서야 정말 내 마누라될 사람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밉지도 곱지도 않고 그저 다소곳한 구식의
심성을 가진 듯한 모습... 내가 신부측에서 먼저 패물을 고르시도록 그리
권했으나, 빙장어른의 강력한 권유로 결국 우리가 먼저 패물을 골랐다.
금은방 주인은 우리가 들어서는 순간, 간만에 묵직한 수입이 보장되는
허울 좋은 시계나 패물 파나보다 하는 기대로 불콰한 얼굴 가지고 고가
제품들이 놓여있는 진열장으로 나를 안내했다. 물론 그 때 이미 이름
깨나 날리는 시계, 패물들의 이름을 내가 모르는 바가 아니었으나, 나는
대뜸 금은방 주인에게 다른 걸 요구했다.
이런 껍데기 보기 좋은 거 말고, 모양새야 어쨌던지 오차가 10년 안에
3초 이내로 들어오는 시계를 주쇼. 나의 이 말에 금은방 주인이 갑자기
말을 어버버 하며 더듬더니, 그런 건 저쪽으로 가면 몇 개 있습니다만,
결혼 예물시계 맞출 거 아닌가요? 하고 나에게 물었다. 시계라는 것이
오직 시간을 알기 위한 것이 그 용도라면 용도인데, 예물시계라는 것은
과연 어느 용도로 사용하는 겁니까?
정색을 하며 본론으로 치고가는 나의 주장에, 금은방 주인이 그런 말에
응대를 하다가는, 결국 예물시계에 실속없는 헛돈이 얹힌다는 내용도
고백을 할 지경에 이를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팍 오니까, 말이 막힌 그
양반, 처음에 기대했던 것과 그 내용이 아주 틀린 쪽으로 흐른다는 걸
빨리 눈치채고, 아주 낙담한 표정으로 나를 다른 진열장으로 인도했다.
흥. 진작에 그러실 일이지, 내가 딴 건 몰라도 바늘 찔러 공짜 피 한 방울
얻게 놔둘 위인은 아니므로, 몇 개를 만지다가 나는 결국 금은방 주인
에게 만약에 10년 안에 3초 넘게 틀린다면, 온전하게 수리를 해 주던지,
아니면 아주 새 것으로 배상하던지 해 주겠다는 다짐 아닌 다짐을 받고
나서야 시계를 하나 골랐고, 집사람도 그런 종류의 시계를 골랐다.
반지는 내가 일을 하는데 걸리적거렸으면 거렸지, 도무지 세상 어디에
쓰는 것인지 아직까지도 그 쓸모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는 그런 품목
이므로, 당연히 끼지도 않을 것이므로, 그냥 기념품으로 생각하고 가장
싼 반지를 선택했다. 그런 일을 그렇게 처리하는 내가 내 선친과 빙장
어른께 기특하게 보였는지 그렇지 않은 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뒤돌아서 돈을 지불하시는 두 분의 표정이 무척 밝으셨고, 무엇
보다 나의 느낌 상, 내가 무엇을 고를지에 따라 적어도 기백만원을 능히
호가할 수 있는 품목들을, 단 몇십만원 안에서 그것을 다 해결했으므로,
양가 공히 그 어떤 불만도 없으시리라는 느낌만 있었다.
인생에서 진정한 전투다운 전투가 시작되었다. ㅡ 누가 나에게 결혼을
규명하라면, 나는 이제 이렇게 짧고 간단하게 규명한다. 그 전의 전투란
것들은 모두 다 무료한 신경전이거나, 자존심 싸움이거나, 정확한 타깃
없는 허공에 쏘는 총이거나, 오로지 자신 하나만을 위한 참으로 재미가
없는 싸움이라면, 이것은 나와 타인과 내 집안 다른 집안, 또는 나아가
더 확장된 사회와 민족과 나라까지도 포용되는 그런 싸움이기 때문이다.
사실 올곧은 삶에 관한한, 그 뜻을 아무리 멀고 깊게 둔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자기 자신만의 의지라던가 한낱 개인의 사리사욕에 천착해지는
게 사람으로써의 한계이다. 나도 한낱 그런 소인배라서 결혼하기 전까지
도모했던 모든 일들이 오로지 내 입장에서 그리 한 것 뿐이라서, 그러한
결혼생활을 하기에 내 마음의 확장기능이 없어서 무척 애를 먹었다.
나는 결국 그러한 나의 모자라고 협소한 부분을, 가끔 뵙는 빙장어른의
말씀이라던가 뜻이라던가 행위하시는 방법론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오직 과묵하고 결단성 있는 행위, 냉철하고 이성적인 것으로만 세상을
대하던 그 모습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한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 기쁘고도 아픈 가치에 대한 이해와, 그런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서도
이 세상을 생각하는 그 애닯고 순수한 애착을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이 세상에서 만난 저 숱한 사람들 중에, 나는 그 중 나의 빙장어른을
첫 손가락에 꼽는다. 하늘의 뜻으로 기관지 천식, 심장병, 고혈압, 당뇨
등으로 병약한 몸을 타고 나셨지만, 남부럽지 않게 그 숱한 남매 낳으시고
기르시어, 그 어느 누구 하나 건강하지 않거나 삐딱한 자식이 없는 나의
빙장어른을, 장대한 기력으로 천하를 좌지우지하던 그 어느 누구보다 더
강건하게 이 세상을 살다 가셨으며, 그리하여 지금도 내 마음에 사시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고들 하지만, 나는 수신제가라면 모를까, 미심쩍어
저 뒷쪽에 슬그머니 붙여놓은 치국평천하는, 어느 누구도 아직 이 세상에서
이루지 못했으며, 앞으로 어느 누구도 영원히 이루지 못할 애석한 꿈이라는
것을 잘 안다. 하물며 살아보니 수신하고 제가하는 것만해도 옳게 하려면
솔직하게 말해서 사람의 평생을 바치고도 한참을 모자라게 생겼다.
한 반년 정도 마지막 병고에 시달리시던 빙장어른께서 며칠 전 이 세상을
뜨셨다. 한 사람의 죽음에 임하는 다른 사람이 할 일은 늘 분주한 듯 하지만,
속을 열고 보면 사실 아무리 능력있는 사람이라도, 속수무책일 뿐이다. 그
만큼 자연의 섭리는 완강하여, 빙충맞은 내가 마지막 떠나시는 길에 아무런
고언이나 별사 한 마디 건낼 수가 없었다.
다만 세상 떠나시기 며칠 전, 나도 나의 다음 공사 건으로 객지 나가기로
약조가 된터라, 짐을 싸다가 문득 이 길이 빙장어른과 이 세상에서 마지막
순간임을 내가 먼저 직감하였고, 그 날 나는 막바지로 치닫는 고통 때문에
끙끙 앓으시는 빙장어른 곁으로 가서 하룻밤을 꼬박 세운 것이 끝이었다.
무엇이 사람의 최선인지는 아직 모르나, 그러나 그 길은 이제 어렴풋하게
어떤 뭉뚱그러진 이미지로써 나에게 보인다. 이것은 참으로 사람으로써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일이다. 이 순간, 나는 내 곁의 모든 것들이 어떻게
변모하고 변질될지라도 철저하게 사랑하고 다시 사랑하리라 다짐해 본다.
-연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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