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소장수 박 서방을 안 것은 언제쯤인지 불명확하다. 거의 다 컸을 무렵인 것 같은데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셔서 그 후로는 매월 두 번씩 우리 집에 오시는 손님이셨다. 개략 우리 집을 드나드실 때의 행동거지로 보아, 마당을 들어서시면서 아버님 더러, 꼭 황소가 움머어~ 하는듯한 묵직한 목소리 톤으로, 형님 내 왔소~ 하셨으니까, 그냥 고향후배나 아니면 학교후배쯤 되려니 지레짐작만 하고 있었다.
사실 그 사람을 시시콜콜하게 안다고 해도 그랬다. 시커멓고 덩치 큰데다가, 늘 흰 고무신에 띄엄띄엄 누런 소똥을 묻힌 채, 내가 방금 물청소해 놓은 마당을 아무소리 없이 철벅철벅 걸어 들어오셔서는, 누가 아무리 급한 이야기를 하여도 다 듣고 난 후, 굵은 눈알을 한참 디룩디룩 하시며 무엇을 한참 생각하시다가는, 종내는 그 이야기한 사람이 숨 깔딱깔딱 넘어갈 때가 되어서야 덜렁 던져놓는 짧은 한 마디. 어허~ 그래서 우짜노? 쯤의 대답을 내어 놓는 그런 사내를 누가 좋아 할리가 있겠는가?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런 사내를 좋아하는 이상한 분이 계시긴 계셨다. 그 분은 다름 아닌 내 아버님이시었다. 늦여름 늦은 점심 자시고 평상에 목침 베고 누우시면, 옆에서 누가 내일 지구가 망한다고 큰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떠들거나, 아니라고 사과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입에 거품을 물거나에 전혀 관계치 않고 오수를 즐기시는 아버님께서, 유독 누가 옆에서 박 서방 이야기만 하면 벌떡 일어나셔서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시곤 하셨는데,
어느 해 설날, 세배하러 온 집안의 대소가의 크고 작은 사위들을 모두 불러 안방에 앉혀놓고 하신 아버님 새해 덕담에서, 나는 이 소장수 박 서방이 과거에 과연 어떤 사람이었는지, 현재는 어떻게 사는 사람인지, 또한 미래를 어떻게 보고 사는 사람인지를 간신히 알 수가 있었을 뿐이다. 좌중을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는 아버님의 하이톤 시작신호인, 어험~ 하는 마른 기침소리와 함께 덕담이 시작되었다.
요새는 세월이 무신 올곧은 뼈대도 하나 없고, 실팍한 두께의 기름기도 없는 세월인지라, 사람 살기가 참 팍팍하고 재미가 없는 기라. 안 그렇나? 말하자면 재미라는 것은, 대소가 안쪽에서는 마치 논두렁에 기대 세워 놓은 지게작대기나 복숭나무 가지 밑에 괴어놓은 참나무 등걸과도 같이, 그렇지 않으면 도무지 무엇이 이루어지거나 열려지지 않으므로, 부득이 혈육이 가지는 좀 뻣뻣한 상하관계가 생기기 때문에, 될 건 확실히 되고 안 될 건 확실히 안 되고 그렇기 때문에, 사실 색다른 재미라고 하는 것을 만들어내기 힘든 거 아이것나? 자네들 본 김에 내가 재미있는 옛날 이바구 한 자리 해 주지.
멀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렇게 가까운 것도 아닌 옛날에, 박 서방이라고 있었다. 아주 추운 겨울날, 내가 좋아하는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 친구 선 보러 우리 동네에 처음 왔었는데, 보기에도 그렇고, 안 보고 목소리만 들어도 그렇고, 첫 상면에 문득, 이 사람 소장수 하면 딱 좋을 사람일쎄 그랬는데, 물어보니 소장수는 아니더라고. 그저 시쳇말로 날 좋으면 고무신장수하고 비 오면 우산장수하고 그러던 바람에 묻혀 사는 그저 그런 장돌뱅이였는데, 내가 생각난 김에 그 말을 해 주긴 했지. 자네 소장수 하면 아주 잘될 좋은 상이야, 하고.
장가 온 첫날. 동네에서 방귀깨나 뀐다는 젊은이들이 다 모인 가운데 권커니잦커니, 발바닥을 때린다니 손바닥을 때린다니 하다가 시들할 무렵, 배도 부르고 농담도 다 떨어지고 그러니까 누가 지나가는 말로, 아이구~ 박 서방. 자네 처가가 좀 빈한해서 말이지. 자네 장모님께서 그러시는데 말이지, 안주가 다 떨어졌다는구먼. 잔칫집에 안주 없대서야 누가 믿겠나? 우린 워낙 읍내에 외상이 굴비두름으로 열 두름쯤 걸려있어서 말이지. 잽히면 얼굴 보기 심들 것이네. 다리 심 좋은 자네가 좀 갔다 옴세, 그랬는데,
다 듣고 난 후 굵은 눈알을 한참 디룩디룩 하며 무엇을 한참 생각하던 박 서방, 기껏 한다는 말이, 어허~ 그래서 우짜노? 하더니, 부스스 일어나 손을 몇 번 툭툭 털고 나서는 방문을 찌그덕 열고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서 나가는 거라. 당연히 우리는, 어흠~ 보자. 박 서방 손이 얼마나 큰지, 그나저나 지금 이 시간에 읍내에 문 열려있는 가게가 없을 것인데…, 아이구~ 춥아라. 바람 닫아라, 문 들어온다. 하며 희희낙락 하고 있었는데,
밖에는 북풍한설 찬바람만 휘이이잉~ 몰아치고, 마당에는 무신 찌그러진 양재기 날아가는 소리, 뒤란에 걸쳐놓은 농기구 쓰러지는 소리 들리고, 아마 한 시간쯤 지났을 끼라. 방문이 왈칵 열리며 박 서방이 들어서는데, 갑째기 찬바람에 피비린내가 섞여 확 끼치길레 보니까, 흰 한복이며 손에 버선에 핏자국이 벌겋게 묻어 있는 기라. 가슴이 덜컥하며, 이 사람이 장가 온 첫날, 어디서 칼부림을 했는가 싶어, 이 사람아 이게 웬 일인가 하고 물으니, 씩~ 웃으며 저쪽 어둠 속 마당 모퉁이를 가리키는 거라.
문을 열고 대청마루에 나간 사람들이 박 서방이 가리킨 마당 구석을 힐끗 보니, 뭐가 죽어 자빠져 있는데, 사람들이 모두 버선발로 마당으로 우르르 뛰쳐나가고… 남폿불을 들고 나가서 보니, 어허~ 세상에, 뿔도 선명한 큰 소가 한 마리가 온전하게 뼈와 살과 껍데기가 깨끗이 분해되어 쌓여 있는 거 아이겠나?
이기 뭐꼬, 박 서방! 사람들이 일제히 다그치고, 박 서방 태연히 말하길, 안주가 마땅찮은 게 생각이 안 나서 한 마리 잡았슴다. 사람이 많아서 머 묵을 게 있을란둥 모르것지만, 아이고~ 두야! 박 서방 장모가 후닥닥 소외양간 거적을 들춰보니, 당연히 거기 있어야 될 소가 없는 거라. 요즘 시상에는 소 한마리가 뭐 그리 대수겠냐만, 그 때는 소가 집안 가보 중에 제일 큰 가보였지.
그 암소 한 마리면 새끼 쳐서 애들 서너 놈 족히 공부시키고도 남음이 있어, 시집 장가 갈 때도 보태곤 했으니까, 아이고~ 내는 살아도 몬 산데이~ 박 서방 장모가 마당에 누워 버둥거리기 시작하고, 이랬거나 저랬거나 그렇다고 아무리 들여다봐도 죽은 소가 살아올 기미는 없고, 박 서방 장모 서슬에 누가 딱히 나서서 솥에 불도 못 때고 엉거주춤 하고 있는데,
그 때 마루에 걸터앉아 멀뚱하게 눈만 뒤룩거리던 박 서방, 벌떡 일어나더니, 장모님! 내가 10년 안에 소 사 드릴께요. 하면서 소고기를 들어서 가마솥에 안치는데, 그 성깔 사나운 박 서방 장모, 손님들 때문에 뭐라고 욕도 못하고, 아이고~ 내는 살아도 몬 산데이~만 거듭 곡을 하고 있고, 우리는 그렇게 또 서서히 희희낙락 소고기를 굽고 삶고 지지고 볶고 난리를 치며 그날 밤을 새웠는데,
아침에 설핏 잠들었다가 오전 늦게 잠이 깨어 일어나 살짝 나올 때, 부엌 어귀에 쌓인 소 뼈다귀를 보니까 진짜 술이 확 깨더라. 박 서방 장모 저거 보면 얼마나 뼈마디가 아플꼬 싶어 조심스레 도망치듯 그 집을 나왔지만, 지나가다가 그 집만 돌아보면 내내 가심 어딘가에 고깃덩어리가 턱 맥힌 듯 멍 하곤 했제.
그 새 몇 해가 흐르고, 그 박 서방 어느 날 온다간다 말도 없이 고마 밤 보따리 싸서 지 마누라랑 내몰라라 내뺐는데, 들리는 소문으로 어디 먼 데 객지 장을 떠돌며 신발장수 우산장수 해 묵고 산다는 기별만 가끔 들리더만, 가끔 장에 머리 짐 이고 나물 팔러 나오는 박 서방 장모를 만나면, 박 서방 우째 잘 있다던교? 하고 물어보곤 하였지만, 그 배라처묵을 박 서방 이바구는 인자 고마 해라! 하며 톡 쏘는 바람에 더 이상 물어 보도 못했제.
그라고도 아매 근 이십년쯤 안 흘렀겠나? 오후에 파장 보러 나갔는데, 갑자기 우시장 근처가 시끌벅적 하더니 큰 트럭 몇 대가 먼지를 풀풀 내며 들어오는 기라. 이기 먼 일인고 싶어 가 보니, 차에서 누가 턱 내리드만, 성님~ 내 왔소! 안 카든가베? 눈을 펄쩍 뜨고 보니께, 쪼매 늙긴 했지만 옛날 그 박 서방 아이가? 아이구~ 얼마니 반갑던지!
이 사람아. 자네 우짠 일이고? 어데 갔다가 인자서 왔는가? 그래. 집사람하고 애들은 잘 있고? 잘 있고말고요. 시간 잠시 나길레 빚 좀 갚으러 왔심다. 그 때서야 가만히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몰고 온 차에는 누런 소들이 그득한 거라. 이… 이 소가 다 자네 꺼가? 하문요. 소 사드린다는 날짜가 쪼매 늦어서 좀 낫게 가져 왔심다, 우리 장모 어데 계시는교?
그제야 후다닥거리며 박 서방 장모를 찾으니, 마침 떨이하고 전 걷어서 보따리 머리에 이고, 하마 꼬부라진 허리에 손 훼훼 내저으시며 벌써 시장을 벗어나 저쯤 가시는데, 내가 아주 시장 통이 쩌렁하게 큰 소리로 불렀제. 박 서방 장모요~~~ 하고. 말하면 뭐하나? 그 날 가져온 소가 무려 12마리나 되더라. 동네로 들어서서는 또 그 박 서방 훨훨 나는 칼 솜씨로 소 한 마리 또 때려 잡았제.
동네 아이들 모두 야밤에 꼴을 베어 싣고 온 소들에게 주고, 한참 권커니잦커니 하는데 박 서방이 나한테 그카는 기라. 언제 성님께서 저보고 소장수 하라켔지요? 지가 어느 날 성님 그 말이 문득 떠올라 댐박에 신발, 우산 팔아 치아뿌고 소장수를 시작했는데요. 운때가 잘 맞았는지 성님 그 족집개 운세에 잘 집혀서인지 그 후로 꽤 모았습지요.
늘 생각했었는데요. 성님을 내 평생 성님으로 모실까 생각합니더. 성님 생각은 우떠신교? 우떻거나 말거나, 나는 자네 본 그 순간 내 평생 동상 삼기로 작정을 이미 했던 바, 실행은 못하고 세월만 이리 흘렀제.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우리 우애 깊게 같이 살아보세. 박 서방 그 다음날부터 몇날 며칠을 외양간 지어, 함지박 만하게 벌어진 입 다물 줄 모르는 지 장모에게 바친 후, 또 훨훨 객지로 나갔는데, 아직까지 한 달에 두 번씩은 꼭 나한테 들렀다가 가곤 하제.
그래도 나는 늘 그립곤 하네. 박 서방 올 때 늘 들고 오는 따뜻한 간천엽이나 들큰한 소고기가 맛있었으면 을매나 맛있었을꼬. 나도 살아봤지만, 무시 때 안 좋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난세에 그 만큼 호방하고 굵은 기질 가지기는 그리 쉽잖은 일이제. 세월도 많이 흘렀고, 박 서방도 나도 이제 머리에 허연 눈이 소복하게 늙었지만, 그 기질은 여전하제.
그러나 기질 여전해도 각자 사는 방편에는 때가 있는지라, 더 이상 그의 세상은 없을 것이고, 내가 그 먼 세월이 지난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다리 건너 자네들을 오늘에사 또 보네만, 이제 누가 나서서 그런 사람 사는 재미를 나에게 줄지 나는 또 기다려지네. 여기 윤서방 자넨가? 아니면 거기 이서방 자넨가? 모두 고개 설레설레 체머리를 흔들고… 그해 아버님 신년 덕담은 그렇게 막을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박 서방 그가 아무리 사람이 좋고, 그의 어떤 그것이 우리에게 실팍한 그 무엇을 준다한들, 그것이 무신 대물림 되어야 할 그 무엇이라든가, 아버님 좋아하는 사람이라 무작정 나도 좋아 해라는 법은 없었다. 단지 소장수 박 서방과 나 사이에는, 이런 일만 있었다.
단지 이 양반 우리 집에 들어오실 때 싱긋 웃으시며 내 머리에 꿀밤 한대 놓는 거 하고, 나가실 때 아버님께 인사드리면서 꿀밤 때린 내 머리를 살살 쓰다듬다가 나가시는 거 외, 나가신 후 시멘트 마당에 묻은 소똥을 물청소 하는 것은 오로지 내 일이었으므로, 그 일 한 후 맛보는 간천엽이라든가 소고기가 맛있을 리는 만무였다.
어느덧 달이 바뀌고 해가 흘러 나도 어언 20대 후반이 되었다. 사회초년생으로 몇 번의 쓴맛 단맛을 보고, 보는 동안 그런 만남과 이별도 제각기 나를 몇 번 흔들고 지나가고, 어렴풋이 세상물정에 눈이 떠지면서 세상이 내가 생각하던 그런 곳이 아니란 것을 아는 덴 단 3번의 실패가 오기도 전에 깨달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지만 무작정 집을 떠나는 일 밖에 내가 더 할 일이 없었다. 2층 내 방에서 보따리를 싸고 있었다. 아니다. 버리고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직도 과한 욕심이 남아 짐이 자꾸 크게 싸져서 두 손으로 들고 갈 정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다시 짐을 방안에 다 부어놓고 정녕 필요한 것인가 아닌가를 생각한 다음 꼭 필요한 물건만 선별해서 주워 담았다. 드디어 큰 가방 하나와 서류가방 하나로 짐이 줄었다. 됐다. 이 정도면 다시 패배한다고 해도 무엇을 잃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거다.
갑자기 아래층에서, 성님, 내 왔소~! 하는 소리가 들린다. 하필 저 영감이 이 때 올 게 뭐람. 나는 가방을 방구석에 밀쳐놓고 내 방을 마지막으로 보는 심정으로 샅샅이 훑어본 다음, 가방을 들고 나와 문을 닫고 아래층을 슬쩍 내려다보았다.
소장수 박 서방은 아버님 방에 들어갔는지 흰 고무신이 방 앞에 놓여있었다. 발소리 안 나게 살살 계단을 내려왔다. 막 아버님 방 앞을 지나려는데 갑자기 방문이 왈칵 열리더니, 소장수 박 서방이 예의 그 뒤룩뒤룩한 눈으로 나를 넌지시 쳐다보고 계셨다.
안 그래도 느그 아버님과 얘기하고 있었다. 요즘 논다며? 노는 것도 잘 놀면 괜찮은데, 놀 줄 모르면서 놀면 그것 보다 더한 지옥은 없지. 그래. 어데 조흔데 가 볼끼락꼬 보따리를 요렇게 이뿌고 실하게 쌌나? 그건 글코, 집 떠나면서 아부지께 인사도 안 드리고 그냥 떠날라 캤나?
…그냥 한번 떠나볼라고요. 떠나는 거 좋지. 안 떠나고 있어도 모든 건 다 떠나고 있는 기라. 어데로 갈라고? 아는 형님이 와보라 캐서 더 아랫녘으로 가 볼 참입니다. 그래. 지 가고 싶어 가는 거 누가 말릴 것이며, 그거 아니래도 두 발 달린 짐승이 어덴들 못 갈끼고? 가고 싶은 데 있으면 머시마 맘 곯기 전에 퍼뜩 가 봐야제.
그란데 갈 때 가더라도 내일 떠나면 안 되것나? 내가 니 하고 뭔 일 하나 할 게 있어서 느그 아버님한테 말씀 드리고 안 있었나? 나쁜 일이거나 힘이 많이 드는 일 아이다. 그래줄 수 있것제? 떠나는 것에 대한 소장수 박 서방의 흔쾌한 대답과 아버님의 묵시적 동의를 구한 나는, 그깟 하루 정도 늦게 떠난다고 세상이 곧 멸망할 일도 아니고, 그러시라고 순순히 대답을 드렸다.
이런저런 잡생각 때문에 새벽녘에 잠든 나는, 꿀맛 같은 아침잠에 빠져있었는데, 갑자기 방문이 와르륵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야아야. 시방 맺신데 안즉 자고 있노? 내가 몬 산다. 언니요. 그 마이 똘똘하던 야아가 요새 와 이래 됐노?
야아야. 고모 왔다. 퍼뜩 일나가꼬 내 얼굴 안 보나? 엉? 야아가 요새 얼굴이 와 이래 마이 축났노 말이다. 하시며 내 볼을 꼬집고 당기고 하신다. 고모는 하여튼 마술사다. 절간 같던 내 방이 한 순간에 갑자기 어시장 경매센터가 되고 말았다.
고모. 우리집에 우짠 일 입니꺼? 연신 물고 늘어지는 잠을 떼느라 끙끙거리면서 퍼질고 앉아, 내 이마를 쓰다듬고 볼을 꼬집어보는 고모 손을 뿌리치면서 내가 인사를 드렸다. 우짠 일이기는? 느그 엄마 아부지 하고 박 서방이 하도 불러서 서울서 밤차 타고 왔제.
니 퍼뜩 일어나서 면도하고 머리 감고 세수하고 그라고 양복 빨리 입어라. 아이다. 마 됐다. 양복은 내가 준비할 테니 니는 면도하고 세수나 잘 해라. 아이구, 이 귀여운 것, 하마 이 마이 다 컷제? 세월이 유수다 못해 장마통 홍수물인 기라.
도대체 고모를 왜 박 서방이 불렀을까? 잠이 덜 깬 상태에서도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곧 소장수 박 서방도 오시고 근처에 사시던 이모도 오셨다. 아버님과 겸상으로 아침식사를 하려고 숟가락을 들다가 고모께 여쭈었다. 고모요. 오늘 뭐하는데요? 오늘 무슨 날입니꺼?
야아가 무신 소리고? 오빠, 아직 얘기 안 했심니꺼? 아이구~ 그랬는가베? 정작 본인이 모르고 있으면 우짜노? 오늘 니 선보는 날이다. 박 서방께서 잘 아는 집안이란다. 박 서방 중매면 안 봐도 금줄이지만, 그래도 집안 대사라 카는 기 어디 글나? 가서 단디단디 잘 봐야제.
밥을 먹고 좀 쉬고 있으려니까 고모가 내 양복을 세탁소에 가서 뺸질뺀질 다려 왔다.. 어디서 준비했는지 내 넥타이도 아니고 아버님 넥타이도 아닌데, 완전히 단색으로 시뻘겋게 촌스러운 넥타이가 고모 손에 들려있다. 고모. 이거 어디서 났어요?
어디서 났든. 이거 구한다고 내가 욕 좀 봤다. 암 말 매고 매라. 내 넥타이 많이 있는데.. 나 이거 안 맬라요. 야아가 뭐라카노? 곤색 양복에는 마 자고로 빨간색 넥구다이가 최고다. 내 말을 들어라. 니는 고모 말만 들으면 늘 자다가 찹살떡 생기게 된다.
결국 촌스런 넥타이를 매고 쭈뼛거리며 어른들을 따라 길을 나섰다. 휴우~ 내가 어쩌다 이런 막다른 골목까지 왔는지 싶어 좀 한심스러웠지만, 소장수 박 서방 앞에서 쪼잔하게 청승 떨기도 그렇고 해서, 첫선? 그냥 하나의 가벼운 이벤트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다. 시내 큰 도로로 나와 어느 다방을 가시려나? 이쪽저쪽 살펴보는데, 소장수 박 서방께서 넌지시 나에게 말을 건넸다.
버스 타고 한 시간 가서, 걸어서 삼십분쯤 들어가야 되는 시골이다. 느긋하게 생각해라. 휘적휘적 버스터미널로 발길을 돌리고, 나는 차를 타자마자 조는 버릇이 있어, 앉자마자 또 졸고, 버스 안에서도 고모는 버스 탄 모든 사람들이 마치 한 동네에서 50년 같이 산 사람들인 듯, 나와 우리 집안과 내가 첫선을 보러간다는 사실에 대하여 적나라하게 입에 침을 튀기며 자랑을 하셨다.
졸다보니 어느덧 버스가 도착했고, 그야말로 걸어서 또 삼십분 산으로 들어가니 아담한 동리가 하나 있었는데, 그 중 아주 큰 오동나무가 쏴아아 바람소리를 내는 집으로 들어갔다. 집안으로 들어가 보니, 보기에 소작은 아니고 시골에서도 밥술 깨나 먹는 집안인 듯했다. 본채 하나에 행랑채를 디귿자로 두 개 거느리고 산비탈 쪽에는 안채를 두어, 안쪽에 마당과 화단을 안고 있는 전형적인 미음자 집이었는데,
소장수 박 서방께서 가화만사성 먹물이 채 마르지 않은 듯 선명한 문 앞에서 일단 뒷짐을 짚고 허리를 쭈욱 곧추 펴시더니, 아주 큰 목소리로, 번현리 박 서방 왔소~ 하고 외쳤다. 이내 초로의 웬 사내가 문을 삐걱 열고 나와 손님들을 마주하고, 대청마루 건너 큰사랑 채에 들어가니, 동네 어른들이 다 모이신 듯 근 스무나문 명이 모여 계셨다.
일단 소장수 박 서방께서 양가 소개를 간략히 하시고, 그 후 아버님이 나서 집안인사를 하셨다. 박 서방을 통해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아주 좋으신 집안이더군요. 조상님들도 훌륭하신 분들이 많으시고… 저희 집안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신라 경주김씨 xxx파 직계 손으로써 제가 47세손이 됩지요. 조상님들 중에서 대강 귀에 익으신 몇몇 분들의 함자를 잠깐 소개드리자면,
고려 때 중서시랑평장사를 지낸 인자 경자 어른이 계시고, 삼한벽상공신으로 중내령을 지내신 예자 겸자 어른… 고종 때 한림학사를 거쳐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낸 태자 서자 어른… 아버님 입으로부터 고려 초엽부터 조선 말기에 이르는 기라성 같은 문무백관들이 주무시다 갑자기 깨어 줄줄이 불려나와 바로 옆에 서시니까, 그쪽 집안사람들은 모두 주눅이 들어 계시고,
근 30분 지속된 아버님의 집안자랑 다음으로 그쪽 집안의 삼촌뻘 되시는 입심 세신 분이 나와 또 30분, 그 다음 이 동네와 우리 동네와 교류가 있었던 사람이나 이야기로 근 30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또 30분, 도합 2시간 쯤을 그러신다. 나는 속으로 입이 째지게 하품을 하면서, 듣는 둥 마는 둥, 그래도 그 와중에 선 볼 여자가 누구인가가 궁금하긴 했었는데, 그러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모두 연세들이 40 이상은 다 넘어 보였다.
허리가 다 뻣뻣하고 오금이 저릿저릿해질 때쯤에야 그쪽 중매쟁이가 부스스 일어나더니, 그럼 선을 보실까요? 하면서 큰사랑 채 끝에 달아지은 조그만 방의 방문을 드르륵 열었다. 모두 일어나 작은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방으로 딱 들어서는 순간, 오오~ 어느 날 내가 별안간 귀 환하게 열리던 날, 들었던 화사한 말 중에 규수라는 말이 있었더니, 참으로 규수라 불러 마땅할 만한 여자가 한 사람 거기 있었다.
게다가 앉은 그 자태. ㅡ 선연한 초록저고리 다홍치마, 메밀밭에 노을 비꼈을 꺼나, 다소곳이 숙인 아미에 떠오르는 붉은 수줍음.ㅡ 쯤에 비견될 만한 자태의 규수가 거기 앉아있었다. 어느 덧 아버님, 어머님, 나, 고모, 이모 순으로 규수 앞에 앉았다. 그 쪽 집안은 그 규수 좌우로 죽 앉으시고… 규수는 미동도 없이, 한쪽 다리를 세운 참한 자세로,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를 뒤로 사뿐히 느슨하게 묶고, 고개 숙여 앉아있었는데,
그것도 잠시, 역시 고모는 분위기 반전의 마술사였다. 그 아름다운 광경을 한 순간에 깨뜨리며 벌떡 일어나시더니, 자~ 그럼 어디 한번 봐도 될까요? 하시면서, 상대 쪽에서 승락을 하시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고, 대뜸 15대 외동아들 며눌아기를 고르는 듯한 도도한 시어머니 같은 자세를 만고에 청청하게 견지한 채, 저벅저벅 규수에게 걸어가 대뜸 규수의 어깨부터 덥석 잡아 만져 보셨다. 규수가 깜짝 놀라면서 움찔 했다.
내 간단없는 눈썰미로, 고모 생각엔 아마 오뉴월 땡볕 정도에서는 반나절에 한 번도 쉬지 않고 호미로 삼천 평 깜장 보리밭 고랑을 맬 어깨인가 아닌가를 짐작하시는 것 같았다. 그 다음, 뒤로 한 바퀴 빙 도신 다음 규수의 엉치께로 가서 덥석 엉치를 잡아보신다. 또 다시 규수는 움찔! 파르르 떨고… 거기서 고모는 으음~ 하며 생각에 잠기신다.
아마 고모는 그 순간, 규수가 그 삼천 평 깜장 보리밭 고랑을 매다가, 가만 있거라 보자, 아까부터 아랫배가 살살 아파 오는 거 보니까, 얼라 놓을 시간 다 됐는갑다. 되도 않은 산파한테 가서 구랭이 알 같은 돈 주고 애낳느니, 마~ 여기서 낳자. 한 힘에 끙ㅡ 그 자리에서 애를 쑥 낳고, 다른 한 힘으로 어금니에 힘 주어 탯줄 툭 끊은 다음, 대번에 그 애기를 집으로 들고 올 수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를 고려해 보시는 것 같았다.
갑자기 내 등골 윗부분에서 진땀이 나더니 꼬리뼈 쪽으로 주르르 물 흘러 내려가는 소리가 났다. 선을 본다는 얘긴 들었지만, 친구들 같이 다 어디 다방에 가서 보는 줄 알았지, 이렇게 우시장 소 고르는 방법으로 선을 본다는 그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것을 당연한 듯 치르고 있는 저쪽 집안사람들도 참으로 대단한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고모가 돌아와 자리에 앉으셨다.
휴~ 이제 끝났나 보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번엔 이모께서 벌떡 일어나셨다. 이모는 한술 더 뜨셨다. 규수의 머리 결을 한번 슬슬 만져보시더니, 대뜸 고개 숙인 턱밑으로 손을 넣어서 턱을 척 치켜들었다. 오오~ 연한 복숭빛 나는 홍조띈 얼굴이 눈을 감고, 그 얼굴을 좌우로 돌려가며 얼굴 생김새와 턱 상태를 요리조리 보시니, 규수는 부끄러워 얼굴 발개지고 내 입에서는 으으으~ 비명소리가 나기 직전인데,
이모는 전혀 그런 것에는 개의치 않고, 규수에게 당연하다는 듯 다음 주문을 하였다. 입을 한번 아~ 하고 크게 벌려 보겠느냐? 입을 벌려 보라니? 아아, 얼굴 보이는 것마저도 저리 부끄러워하는 규수에게, 입을 벌려 보라니? 결국 주춤거리는 규수의 입을 악착같이 벌려 이빨검사까지 다 하신 이모께서, 내가 언제 그런 비인간적인 일을 한 사람이냐는 듯, 우아한 자태로 걸어 들어와 자리에 나붓하게 앉으셨다.
그러나 우리 집안이 대단한 집안인 것은, 그런 종류의 일을 그렇게 간단하게 끝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엔 어머님께서 나서시어 고모, 이모께서 하신 학습을 고대로 복습을 하시는 게 아닌가? 다시 어머님께서 들어와 고모와 이모와 귓속말로, 으음 글체? 그래, 그기 쫌 글타 그쟈? 해 가시면서…… 아아, 그날 무슨 우시장이, 세상에 그런 진땀나는 우시장이 없었다.
그러면 그렇지, 소장수 박 서방이 만든 일이 이런 일 밖에 더 있으랴? 모든 학습 복습이 다 끝난 후, 또 장날 사돈 만난 듯한 인사에 인사를 겹겹이 몇 번이나 치르고서야 간신히 그 집을 빠져나올 수 있었는데, 도무지 내가 무엇을 보았는지, 허깨비한테 홀린 것인지, 너무나 충격적으로 선을 보아서인지, 보긴 봤는데 정작 그 규수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하나도 기억에 나지 않았다.
소장수 박 서방과 고모가 저쯤 뒤에서 무어라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오시고, 나는 먼지 풀풀 나는 시골길을 가증한 한 최대한 빨리 걸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걸어가면 이 끔찍한 일을 빨리 잊어버릴 수 있다는 듯이 앞서서 내처 걷고 있었다. 멀리 뒤에서 어머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야아야, 큰애야. 우째 너 혼자 그냥 가냐? 선을 봤으면 싫다 좋다 양단간에 무어라고 말을 해야지. 야아야~ 선본 애기가 맘에 드냐? 괜찮냐? 괜찮제?
묵묵부답 일언반구 말도 없이 부리나케 버스 종점에 도착하여, 서 있던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집에 온 즉시 양복을 벗어 방바닥에 패대기 쳐버리고 싸 놓았던 짐 가방과 서류가방을 들고는 이내 집을 나와 버렸다. 버스를 타고 남녘으로 향했다. 어스름에 해는 지고, 내 청춘도 그렇게 시들고 있었다. 도착 즉시 집에 전화를 걸었다. 아버님께서 받으셨다. 인사도 못 드리고 와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다.
글쎄… 그건 글코, 아무리 세상이 뒤집어지고 엎어져도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벱이제. 그 집 애기가 니 맘에 드냐 어쩌냐 그것부터 이바구를 해라. 아버님~ 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내가 뭣을 알아? 나는 너한테서는 아는 기 없다. 단지 내가 아는 것은, 니가 내 제사 지낼 놈 못 만들면, 내라도 만들어야지, 그렇지 못하면 이 모든 거 또도 개도 안 된다는 그 정도만 알고 있다.
박 서방이 내 보고, 이 정도 했으면 아마 지 알아서 할끼요. 그카긴 했지만, 나는 이걸로 미흡하다. 내가 아직 내 대 이을 자손은 고사하고, 그 뿌리가 될 며느리도 못 본 처지 때문에 조상 볼 면목도 없는데, 세상 볼 낯이 어데 있겠나? 딱 사흘 여유를 주마. 그 집 애기가 맘에 드는지 안 드는지 사흘 안에 나한테 통보해라. 안 그러면 나는 니가 뿌리도 이파리도 없는 그런 해깝은 놈인 줄 알고 있을 거다. 예고 없이 딸깍, 전화가 끊겼다.
사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그 규수가 맘에 들고 안 들고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때까지 나는 단 한번이라도 내 자신 조차도 맘에 든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나는 아버님께 전화를 드리지 못했다. 내가 뿌리도 있고 이파리도 있는 놈이란 것은, 누가 맘에 들고 아니고 이전에 존재할 만한 일이지, 그 이후에 벌어질 만한 그런 일은 아닐 거란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한두 번 아버님의 따가운 질책도, 몇 달 죽어라 일에 매달리는 사이 바람처럼 잦아들었고, 객지로 한두 해 떠돌다가 어느 해 명절에 집에 들어 온 나는, 박서방을 만났다. 일은 재미있나? 별 재미 없습니더. 그래? 허허~ 그래서 우짜노? 청춘사업은 쪼매 하나? 다시는 선보라는 소리 하지 마이소. 절대 안 나갈낍니더. 어허~ 그 놈 참, 성깔하고는, 어지간하면 이제는 길들 때가 되었건만… 박 서방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후 한 동안 아버님과 박 서방은, 늘 나를 이상스레 길이 안 들어 코뚜레 끼우지 못한 다 큰 송아지처럼 생각하시어, 날만 새면 전전긍긍 내 걱정을 하시거나 한탄을 하셨고, 야생마처럼 산천을 떠돌던 나는 어느 해, 먼 소식으로 그 규수가 시집을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날 늦은 취기에 실려 노무자 숙소로 들어온 나는, 어딘가 오동나무 큰 이파리에서 부는 쏴아아~ 하는 바람소리를 밤새 들으며 누워 있었을 것이다.-끝-.
畵 이중섭 '소년' / 音 김용우 '엉겅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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