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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感覺的)인 즐거움의 경지"
피에르 오그스트 르느와르 Pierre Auguste renoir (1841-1919/프랑스)
![]() 1841년 양질의 도자기 생산으로 유명한 중부 프랑스의 리모즈에서 출생한 화가. 4세때 일 가와 함께 파리로 이주하였으며 13세때 가계를 돕기 위해 도기 공장에 들어가 직인의 과정 을 익히면서 일하였다. 그가 담당한 일은 도기의 윗 그림 그리기였다. 이 작업이 결국 평생 화가로서의 길을 걷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20세 때인 1861년에 국립 에콜 데 보자르에 들어가 글레이르의 아틀리에에서 정식으로 그림을 배웠다. 이 아틀리에에서 그는 모네, 시슬레 등과 알게 되었으며 또 외광파의 그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1863년 글 레이르의 화실을 떠나 라투르와 함께 루브르에 다니며 옛대가들의 작품을 연구하였다.
1863 년 글레이르의 화실을 떠나 라투르와 함께 루브르에 다니며 옛 대가들의 작품을 연구하였 다. 1867년경의 작품에는 쿠르베 및 마네의 영향이 현저하게 엿보이고 있다. 1874년 제1회 인상파전에 참가한 것을 계기로 제2회전 및 제3회전에도 출품하였다. 1879년 이후부터는 인 상파의 동료들로부터 점차 멀어져갔다. 1881년 봄에는 알제리로 여행하였으며 가을부터 이 듬해인 1882년에 걸쳐 베네치아, 로마, 남이탈리아 등지를 여행한 뒤에는 또 다시 알제리에 서 그 해의 봄을 보냈다. 그리고 그 해의 제7회 인상파전에는 작품 25점을 출품하였다. 이탈 리아 여행의 결과로서 그가 시도한 고전적인 선의 추구가 1883년에는 뒤랑 - 뤼엘 화랑에 서 개인전을 개최하여 호평을 얻었다. 1890년대 말엽에 이르러서는 지병인 관절염이 점점 악화되어 손에 붓을 묶어 놓고 그릴 정도로 부자유스러운 몸이 되었다. 1903년 이후부터는 겨울을 남프랑스의 카뉴에서 보내고 여름은 부르고뉴의 에소화에서 보냈으며 파리에는 봄 또는 가을의 좋은 계절을 골라 단기간에만 체재하였다. 노쇠와 질병에도 불구하고 제작의욕 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그래서 화경은 더욱 더 완숙해졌다.
그는 훌륭한 풍경이나 정물도 많이 그렸으나 특히 부녀 및 어린이, 나체의 콤포지션에 걸작을 많이 남기고 있다. 만년의 작품을 보면 색체가 미묘하게 융합하고 있어서 선묘적인 요소는 찾아 볼 수 없다. 더구나 대상의 대상의 파악법은 정확하여 생명이 약동하는 듯하다. 색체에 대한 르느와르의 감정은 항상 열렬핟였다. 더구난 거기에는 사람의 의표를 찌른다든가 또는 교묘한 꾸밈을 구사하는 의도가 조금도 없다. 그의 일관된 제작 태도와 마찬가지로 색체에 있어서도 그는 매우 단순 명료한 것을 애호하였다. 해를 거듭함에 따라 즐겨 채용한 색깔은 선명한 녹색 및 순수한 청색에 의해 돋보이는 적색, 귤색, 황색 등이었다. 한편 66세 때에는 마이욜과 사귀면서 그 의 영향을 받아 조각도 만들었다. 처음에는 소녀의 목을 작은 원형 양각으로 만들다가 만년 에는 커다란 환조에도 손을 대었다. 젊은 조각가인 조수가 있었는데, 이사람은 르느와르가 주도하고 지시하는데 따라 작업하여 [비너스], [무릎 꿇은 사람] 등 청동상의 모델을 만들었 다. 1919년 12월 카뉴에서 상망하였다. 대표작으로는 루브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목욕 하는 여인들], [피아노 앞의 앉은 소녀] 등을 비롯하여 [목욕하는 여자와 강아지], [관객석], [우산], [테라스에서], [나부] 등이다.
1841년 양질의 도자기 생산으로 유명한 중부 프랑스의 리모즈에서 출생한 화가. 4세때 일 가와 함께 파리로 이주하였으며 13세때 가계를 돕기 위해 도기 공장에 들어가 직인의 과정 을 익히면서 일하였다. 그가 담당한 일은 도기의 윗 그림 그리기였다. 이 작업이 결국 평생 화가로서의 길을 걷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20세 때인 1861년에 국립 에콜 데 보자르에 들어가 글레이르의 아틀리에에서 정식으로 그림을 배웠다. 이 아틀리에에서 그는 모네, 시슬레 등과 알게 되었으며 또 외광파의 그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1863년 글 레이르의 화실을 떠나 라투르와 함께 루브르에 다니며 옛대가들의 작품을 연구하였다. 1863 년 글레이르의 화실을 떠나 라투르와 함께 루브르에 다니며 옛 대가들의 작품을 연구하였 다. 1867년경의 작품에는 쿠르베 및 마네의 영향이 현저하게 엿보이고 있다. 1874년 제1회 인상파전에 참가한 것을 계기로 제2회전 및 제3회전에도 출품하였다. 1879년 이후부터는 인 상파의 동료들로부터 점차 멀어져갔다. 1881년 봄에는 알제리로 여행하였으며 가을부터 이 듬해인 1882년에 걸쳐 베네치아, 로마, 남이탈리아 등지를 여행한 뒤에는 또 다시 알제리에 서 그 해의 봄을 보냈다. 그리고 그 해의 제7회 인상파전에는 작품 25점을 출품하였다. 이탈 리아 여행의 결과로서 그가 시도한 고전적인 선의 추구가 1883년에는 뒤랑 - 뤼엘 화랑에 서 개인전을 개최하여 호평을 얻었다. 1890년대 말엽에 이르러서는 지병인 관절염이 점점 악화되어 손에 붓을 묶어 놓고 그릴 정도로 부자유스러운 몸이 되었다. 1903년 이후부터는 겨울을 남프랑스의 카뉴에서 보내고 여름은 부르고뉴의 에소화에서 보냈으며 파리에는 봄 또는 가을의 좋은 계절을 골라 단기간에만 체재하였다. 노쇠와 질병에도 불구하고 제작의욕 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그래서 화경은 더욱 더 완숙해졌다.
그는 훌륭한 풍경이나 정물도 많이 그렸으나 특히 부녀 및 어린이, 나체의 콤포지션에 걸작을 많이 남기고 있다. 만년의 작품을 보면 색체가 미묘하게 융합하고 있어서 선묘적인 요소는 찾아 볼 수 없다. 더구나 대상의 대상의 파악법은 정확하여 생명이 약동하는 듯하다. 색체에 대한 르느와르의 감정은 항상 열렬핟였다. 더구난 거기에는 사람의 의표를 찌른다든가 또는 교묘한 꾸밈을 구사하는 의도가 조금도 없다. 그의 일관된 제작 태도와 마찬가지로 색체에 있어서도 그는 매우 단순 명료한 것을 애호하였다. 해를 거듭함에 따라 즐겨 채용한 색깔은 선명한 녹색 및 순수한 청색에 의해 돋보이는 적색, 귤색, 황색 등이었다. 한편 66세 때에는 마이욜과 사귀면서 그 의 영향을 받아 조각도 만들었다. 처음에는 소녀의 목을 작은 원형 양각으로 만들다가 만년 에는 커다란 환조에도 손을 대었다. 젊은 조각가인 조수가 있었는데, 이사람은 르느와르가 주도하고 지시하는데 따라 작업하여 [비너스], [무릎 꿇은 사람] 등 청동상의 모델을 만들었 다. 1919년 12월 카뉴에서 상망하였다. 대표작으로는 루브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목욕 하는 여인들], [피아노 앞의 앉은 소녀] 등을 비롯하여 [목욕하는 여자와 강아지], [관객석], [우산], [테라스에서], [나부] 등이다.
![]() 모델의 초상
르노와르는 인상파 시대에 있어서도 반드시 인상파적인 기교에만 얽매이지 않았었다. 물론 그 역시 인상파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빛의 효과에 대해서 적잖은 관심을 기울이기는 했지만, 그는 다만 빛이 쏟아지는 자연 속에서 자연만을 포착하려 들지는 않았다.
빛이 얼마나 인간을 아름답게 만드는가, 또는 인물의 의상을 어떻게 하면 더욱 돋보이게 하는가 등을 골똘히 생각하면서, 햇볕이라는 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알리는 데 주력했다.
따라서 그는 인물을 테마로 할 때, 무엇보다도 빛을 이용하여 색조를 한층 다양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 점이 일반 인상파 화가와 구별되는 르노와르 예술의 특징이다. 이 작품은 인상파전 직후의 것으로, 그러한 특징이 잘 나타난 그림이다.
![]() 디아느
르노와르의 처녀작 가운데 일품(逸品)이다. 그의 나이 스물 여섯 살 때 그린 작품으로 화가로서의 첫발을 기념하는, 이를테면 [기념비적 작품]이다.
화면 중앙에 사냥의 여신(女神) 알테미스, 즉 디아느가 금방 사슴 한 마리를 활로 맞춘 다음, 바위 위에 걸터앉아 노획물을 대견스레 굽어 보고 있다. 이 여신은 별로 신(神)답지도 않게 그려져 있다.
오히려 관능적인 풍만한 젊은 여자, 즉 요녀 같은 인상마저 준다. 이처럼 여체에 충만한 양감(量感)은 선배인 쿠르베의 영향 탓이라고 보여지며, 배경의 나무나 하늘의 느낌은 코로의 자연 묘사를 방불케 한다. 하지만 선배들의 모방에 그치지 않고 여기서도 독자적인 기법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
![]() 부채를 든 소녀
예쁜 소녀를 전경(前景)으로 놓고 상반신 마을 그린 이 작품은 뭔가 골똘하게 생각에 잠기고 있는 듯한 귀여운 얼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유화의 윗부분은 화려한 꽃들로 가득하여 눈부시다.
르노와르는 소녀와 꽃이라는 두 가지 주제를 하나로 구도(構圖)하고 있다. 소녀나 꽃이 지니는 속성(屬性), 즉 아름답고 밝은 면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 나름의 화사한 색감을 십분 강조할 수 있는 좋은 화재(畵材)가 아닐 수 없다. 딴은 이 두 소재란 르노와르를 지탱해 주는 주요한 것인데, 후기에는 이 두 주제가 제각기 독립하여 르노와르 예술로서 성숙해 갔다.
소녀와 꽃을 잇는 곳에 그려진 부채는 구도상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소녀의 둥근 얼굴과 둥근 부채가 짝지어 좋은 조화를 이루고 있다.
![]() 모네의 초상
아르쟝뚜유에서 조그마한 뜨락이 있는 집을 전제 내어, 그림에 골몰하고 있을 무렵의 화우 끌로드 모네가 풍경화 제작에 열중하던 손을 멈추고 뭔가 깊이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한 모습을 그린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예술 창작에 심취된 화가의 진지한 모습을 유연한 필촉과 따뜻한 색감으로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제2회 인상파전에 출품했던 이 작품은, 모네와의 우정을 나타냄과 동시에 인상주의가 가장 순수하게 추구했던 시기의 화가의 한 기록으로서 퍽 값진 그림이다.
모네는 바로 이 그림 속의 팔레트와 붓으로 <아르쟝뚜유의 다리>등이 지방이 풍물을 즐겨 그려 그 나름의 빛과 색채의 향연을 베풀었다. 여인 초상이 대부분인 르노와르 로서는 특이한 작품이다.
![]() 독서하는 아가씨
인상파 시대의 르노와르 작품에는 자연의 묘사보다는 인물, 특히 여인을 주제로 한 명작들이 많다.
이 그림도 그러한 작품 가운데 하나로서 젊은 시절의 르노와르의 특질을 잘 보여주고 있는 대표작이다. 여느 인상파 화가들은 밝은 햇빛 속에 펼쳐진 대자연을 즐겨 테마로 삼아, 밝은 색조를 강조하면서 자연의 빛깔을 추구해 나갔는데, 그에 비해 르노와르는 주로 인물을 중심으로 하여 빛의 효과를 탐색하고 있는 것이 그 나름의 두드러진 특징이라 하겠다.
이 그림에서도 창 밖에서 흘러 들어오는 부드러운 햇살을 받아 역광(逆光) 속에서 젊은 아가씨의 즐거운 독서 삼매경의 한 순간을 잘 포착했다. 얼굴 한 면의 햇 빛 반영이 밝아 싱싱한 생명감을 느끼게 한다.
![]() 쇼케의 초상
쇼케는 인상파 화가들의 활동과 인연이 깊은 패?reg;런(후원자)이었다. 젊은 화가들의 새로운 미술 운동에 대해서 세상은 냉담했고 적의를 품기까지 하였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팔릴 ?reg;가 없었다.
르느와르도 예외는 아니었으며 어렵게 지냈었다. 이러한 시기에 쇼케는 젊은 화가들을 격려하고 그들의 작품을 사 주는 최초의 컬렉터가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르느와르는 먼저 쇼케 부인을 그렸고 다음해에 쇼케 자신의 초상을 2점 그렸는데 이 작품은 그 중의 하나이다.
(다른 한 점은 하아버어드 대학 포그 미술관에 소장) 세잔도 「쇼케의 초상」(1876∼77년)을 그렸는데 르느와르의 기교의 유연성에 비해서 세잔은 구 도의 견고성과 중후한 마티에르가 특색이다. 이는 초상화에서 모델의 개성 표현뿐만 아니라 작 가 자신의 개성이 표현됨을 보?copy; 주는 예가 되겠다.
시대 : 1875년
소장처 : 빈테르투르 오스카 라인하르?reg; 컬렉션 소장
소재 : 캔버스 유채
![]() 우산
잡답한 파리의 노상(路上)에 봄비가 갑작스레 뿌리기 시작한다. 손에 든 우산을 황급히 펼쳐든 사람들, 거리는 한결 더 붐비는 인상이다. 르노와르다운 발랄함과 서민적인 친숙함이 넘치는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의 작품치고는 뭔지 모르게 차가운, 그리고 창백한 톤을 이 그림에서 느낀다. 우산의 아치의 반복과 선 구성의 준엄함, 딱딱한 붓자국의 리듬이 이 화면에서는 느껴지는데, 이는 르노와르가 라파엘로의 예술에 끌려, 이태리의 여행에서 품페이의 벽화(壁畵)에 감복하여 전환기를 맞기 시작할 무렵의 작품이다.
즉 고전 벽화가 지니는 선려(鮮麗)한 색조의 영향을 적잖이 받아 색종(色種)이 줄어들고 있어보인다. 종래의 그 나름의 색조의 융화를 본령으로 했던 그의 수법이 차츰 형체를끌어들이는 방법으로 옮겨가고 있다.
![]() 屋外에 앉은 여인
[누드를 그릴 바에야 누구나 그 그림을 보고 그 유방이나 등을 만지고 싶도록 그려야 할 것이다.] 르노와르는 그의 만년에 이렇게 술회했다. [매만진다]는 말은 어쩌면 그의 예술적 생애의 [ 키워드 (key word)]일는지도 모른다. 이 그림은 정말이지 유방과 등을 만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고혹이 물씬 풍긴다.
이 그림은 그의 나이 마흔 셋 때의 작품이니까, 이 무렵부터 차츰 옷을 입은 부인으로부터 나부로 옮아가는 시기인데, 후반기에 들어가면 헤아리기 힘들만큼 많은 누드를 중심으로 한 시대에 접어들게 된다. 화면 가득히 나부를 놓아 삼각형의 구도법을 쓴 이 그림은, 부드럽고 풍만한 육체의 질감이 잘 나타나 있다.
화면 가득히 채워진 나부의 배치는 삼각형 구도법에 의하고 있으며, 풍요로운 육체의 표현은 르 느와르 특유의 기법에 의해서 묘사되고 있다. 사실 이 무렵 이후의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그가 그 린 나부는 점점 원숙해졌으며, 소녀보다는 성인을 모티프로 해서 육체의 풍만한 아름다움을 그렸 다. 사실 르느와르는 이 무렵 종래의 인상파 기법에 한계를 느꼈었다. 이러한 생각은 이탈리아 여 행에서 폼페이나 라파엘로의 벽화, 더욱이 고전파의 앵그르 등에서 얻은 자극에서 연유되었던 같 다. 만년에 그가 화상을 하는 친구 보라르에게 고백한 사실을 들어 당시의 사정을 살펴본다.
"1883년경, 나는 내가 하는 일에 큰 장벽이 가로놓여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인상주의를 어느 한계까지 추구하였으나, 그 결과 나는 그림을 그리거나 데생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나는 그 당시 함정에 빠져 버렸던 것이었다." 이 말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데생을 할 수 없게 되었다.'라는 내용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주로 인상주의에 의한 대상의 해체 결 과 르느와르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인간의 육체를 통한 인간 자체의 내면 세계의 포착이 불가 능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풍경화에 모네와 르느와르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었음을 말해 주 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체의 표현이 자유롭지 못할 때 르느와르는 표현의 한계점을 느꼈던 것이다.
시대 : 1883년
소장처 : 파리 잰 월터 폴 곰 컬렉션(루브르 미술관) 소장
소재 : 캔버스 유채
잔잔하게 시냇물이 쫄쫄거리는 계곡에서 막 목욕을 끝내고 상쾌한 기분으로 바위위에 앉아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나부상이다.
매우 자연스러우면서도 약간 야생적인 주위 분위기가 젊고 아름다운 여인의 육체와는 좀 괴리감(乖離感)을 느끼게도 하며, 따라서 얼핏 어울리지 않는 듯이도 보이지만, 르노와르는 이 대조(contrast)를 역(逆)으로 이용하여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좀 거친 터치로 바위들을 그리고 있어, 어떻게 보면 심산 궁곡처럼 후진 곳에서 이 욕녀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살결이 고운 육체를 드러내고 있어, 더욱 압도되는 듯한 황홀감을 갖게도 한다. 이와 같은 나부의 기법(技法)은 고전파의 영향을 받아 명쾌한 표현으로 옮아가는 시절에 익힌 것이다.
![]() 그네
공원의 그늘, 산책길에서 만난 지인(知人)들의 다소곳한 대화 장면이다. 매우 흔해빠진 일상적인 정경이, 르노와르의 애무하는 듯한 붓의 촉감으로 말미암아, 놀라울 정도로 밝은 빛의 세계를 나타내 주고 있다.
프라고나르가 그린 <그네>처럼 그렇게 우아한 세계는 아니지만, 서민들의 충족한 생활의 숨결이 그런 대로 눈부신 광휘를떨치면서 밝게 실현되어 있다. 나무 사이로 흘러내리고 있는 빛의 줄기가 화면의 도처에 명멸(明滅)하면서 나뭇등걸과 오솔길이 한결 아름다운 빛으로 반영되고 있고, 멈춰 서 있는 그네 역시 마치 쾌적한 리듬으로 여유롭게 움직이고 있는 듯이도 보인다.
이 그림에서도 르노와르는 자연의 묘사 못지 않게 인물의 표현에 적잖은 관심을 보이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 시슬리 부부
르노와르의 다정한 벗이었던 화가 시슬리가 결혼한 무렵에 그린 초상화인데, 이 그름은 이른바 초상화의 포즈가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자유스러운 모습을 잽싸게 포착하여 다정한 부부상을 부각시켜 놓았다.
이무렵의 엄격한 사실(寫實) 기법 탓으로 부인의 스커트가 지나치리만큼 선명하게 있다. 남편과 아내를 화면 가득히 채우면서 삼각형 도법(圖法)으로 짜임새 있게 구성하고 있다.
특히 르노와르는 두 인물의 얼굴의 볼륨에 신경을 쓴 흔적이 엿보인다. 초기의 사실적인 수법이 잘 드러나 있는 이 그림은 화려한 색조로 발전해 가는 과정을 잘 나타내고 있기도 하다.
![]() 기타를 치는 여인
1890년경에 이르면 르노와르의 부인상은 한껏 무르익어 간다. 모델도 점점 더 풍만한 여인이 많아지며, 그런 포동포동한 육체 속에 감각적인 표현이 더욱 여물어 간다.
이 그림에서는 그런 풍만한 여인을 벗기지 않은 채 화려하고 우아한 느낌을 물씬 풍기게 한다. 이러한 여인의 속성을 잘 드러내기 위해서, 앉은 의자도 이에 대응하여 화려하고 밝게 칠했다.
그 위에 이그림의 악센트를 넣기 위해 여인으로 하여금 기타를 연주하는 포즈를 취하게 했다. 감각의 풍족함과 양적(量的)인 충실함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이러한 경향은 이 그림 이후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르노와르의 부인상의 연작(連作)으로 특유의 예술성을 구축하게 된다.
![]() 춤추는 아가씨
LA DANSEUSE
1874년 캔버스 유채 142X95Cm
워싱턴 국립박물관 소장
음악회에서
음악회에 출연하여 꽃다발을 받은 다음 무대 뒤 휴게실에서 잠시 쉬고 있는 장면이다.
차분히 앉아 있는 두 소녀와 꽃다발 등 매우 우아한 테마를 극히 아름다운 색조로 나타내주고 있는 이 그림은, 퍽 극명(克明)한 묘사를 하고 있어 상당히 엄격한 사실(寫實)의 화법을 보여 주고 있다. 그의 나이 서른 살에 접어들면서부터 르노와르는 친구들과 새로운 그룹을 만들어 새로운 화법을 채택케 된다.
즉, 이른바 인상파 시대에 접어들게 되는데, 이 무렵에 그는 곧잘 소녀들을 모델로 해서 그림을 그리곤 했다. 특히 발랄한 젊은 소녀들을 대상으로 하여 즐겨 그림을 그린 까닭은 소녀의 아름답고 청신하며, 또한 순진 무구함에 당시 매료(魅了)되었기 때문이다.
![]() 머리를 만지는 慾女
[만일 여인의 유방고 궁둥이가 없었더라면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이는 르노와르의 유명한 말이다. 이 처럼 그는 여인의 육체에 심취(心醉)되어 그의 풍려(?麗)한 색채 감각으로 즐겨 여체를 그렸다.
이 작품은 나부가 등을 보이고 앉아 지금 막 수욕(水浴)을 마치고 바위에 걸터앉아 흐트러진 머리를 매만지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인데, 유방과 궁둥이가 한결 돋보인다.
이 여인의 등과 궁둥이가 유난스레 풍요로와 여체의 원숙한 매력을 물씬 풍겨준다. 이 양적(量的)인 육체를 짙은 녹음 앞에 놓아 자연의 청신한 빛 깔과 여인의 뜨거운 육감을 하나로 버무려서 풍윤한 색채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피아노 앞의 아가씨들
두 아가씨가 한 멜로디를 익히려고 열심히 악보를 들여다보고 있다. 두 사람의 마음이 융합되어 있음을 보여 주려고, 르노와 르는 부드러운 색조의 하모니를 꾀하고 있다.
여유만만한 곡선의 굽이침이 화면을 즐겁게 만들어 주고 있는데, 르노와르는 이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운 공간을 몹시 좋아했다. 주제는 일상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범속한 장면이긴 하지만, 이러한 일상성 속의 유연함을 그는 다양한 색조로 포착한 것이다.
빨강, 노랑, 파랑, 녹색 등 원색을 기조(基調)로 하여 이에 대비된 버무려진 색감으로 인물을 감싸고 있다. 그는 대상물 하나하나를 선명한 빛깔로 마무리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엄격한 양식]을 거침으로써만이 비로소 실현될 수 있는 형(形)과 색(色)의 교향(交響)이다.
물렝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갈레트 무도회>, 르느와르는 인간과인간의 상호 관계와 물리적 인 접촉에 관심을 가졌다.
누구보다도 자연과 인간에 대한 애정을 느끼게 하는 그의 작품들은 매우 행복한 기질로 <삶의 기쁨>을 화면에 채웠다.
보트 놀이나 공원에서의 사교모임에서 보이는 여인들의 우아한 의상, 아이들과 꽃의 등장으로 이상주의의 대기와 광선의 효과를 느끼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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